Skip to content
Get App

한국사1 Part 1

한국사 1 강의로 고대 국가부터 통일신라, 고려, 조선, 근대 국제질서까지 체계적으로 설명합니다.

Key Takeaways

  • 한국 고대부터 근대까지 주요 역사 흐름과 사회 변화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 각 시대별 대표 왕과 정책, 사회 구조 변화를 중심으로 역사적 의미를 파악한다.
  • 신라의 삼국 통일은 완전한 통일이 아니었으나 자주적 통일과 문화 융합에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 고려와 조선의 정치 제도 및 외세와의 관계를 통해 한국 중세사의 특징을 알 수 있다.
  • 근대 국제 질서 변화와 외세 침략은 조선 말기 사회 변동과 항일 운동의 배경이 된다.

What the video covers

  •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의 사회 변화와 문화 유산을 설명한다.
  • 고조선의 건국 신화, 8조법, 재정일치 사회 개념을 다룬다.
  •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등 고대 여러 국가와 사회 구조를 소개한다.
  • 삼국시대 백제, 고구려, 신라의 주요 왕과 업적, 국가 체제 발전 과정을 설명한다.
  • 신라의 삼국 통일 과정과 나당 전쟁, 통일신라의 정치 체제와 지방 통치 방식을 다룬다.
  • 고려 초기 왕권 강화 정책과 문벌 귀족 사회, 원 간섭기 상황을 설명한다.
  • 조선의 정치 제도, 지방 행정, 붕당 정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주요 사건을 다룬다.
  • 근대 국제 질서 변동과 조선 후기 외세 침략, 항일 의병 운동 등 근대사 전환기를 설명한다.
  • 각 시대별 대표 인물과 정책, 사회 변화의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체계적 이해를 돕는다.
  • 시험 대비에 유용한 핵심 키워드와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여 수능 및 내신 준비에 적합하다.

Answers

Questions about this video

고조선 사회에서 재정일치란 무엇인가요?

재정일치는 고조선에서 왕이 정치적 권력뿐만 아니라 종교적 역할도 함께 담당하는 사회 구조를 의미합니다. 왕이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여 정치와 종교가 일치된 체제를 말합니다.

신라의 삼국 통일이 완전한 통일이 아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신라의 삼국 통일은 당나라의 군사력을 이용했다는 점과 대동강 이남 지역만 통합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대동강 이북 지역은 발해가 차지하여 한반도 전체를 완전하게 통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통일신라 시대 지방 통치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통일신라는 수도 경주의 지리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지방에 소경이라는 작은 수도를 설치하고, 지방군인 십정을 두어 지방을 통치하였습니다. 이는 지방 균형 발전과 중앙 통제 강화에 기여했습니다.

Full Transcript — Download SRT & Markdown

00:01
Speaker A
반갑습니다. 수능 및 내신 내비 한국사 1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대 국가부터 흥선대응군 정치까지 싹 한번 훑어 볼 거고요. 그리고 3단원에 국제질서 변동과 근대국가 수립 노력까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00:25
Speaker A
먼저 구석기 시대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댄석기입니다. 돌을 다른 돌로 깨서 날카로운 부분을 만들고 그것을 도구로 사용합니다.
00:35
Speaker A
그렇다면 구석기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요? 농사를 지을 기술이 없기 때문에 사냥과 채집을 하였습니다. 동물을 잡고 열매나 식물을 채집하면서 먹을 것을 구했습니다.
00:48
Speaker A
그리고 먹을 것을 찾아다녔기 때문에 이동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생활에 큰 변화가 나타납니다. 바로 신석기 시대입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돌을 그냥 깨는 게 아니라 더 발전해서 갈아 가지고 만든 간석기를 사용합니다.
01:07
Speaker A
그리고 또 중요한 변화가 있는데요. 바로 농경과 목축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먹을 걸 찾아서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직접 곡식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합니다.
01:19
Speaker A
그러니까 이제 한 곳에서 농사를 짓고 동물을 키워야 되니까 이동할 필요 없이 정착 생활이 시작됩니다.
01:27
Speaker A
그리고 신석기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유물이 있는데요. 바로 비쌀 무디 토기입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 곡식을 저장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토기를 만들어 곡식이나 음식을 보관하였습니다.
01:40
Speaker A
이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갑니다. 청동기 시대가 되면 또 큰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데요. 바로 농업 생산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01:49
Speaker A
특히 변동사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생산할 수 있는 식량이 많아집니다. 그런데 농사가 잘돼서 식량이 많아지면 모두가 똑같이 부자가 될까요?
02:00
Speaker A
아닙니다. 농사를 많이 짓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재산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토지나 농업 생산물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힘을 가지게 되겠죠. 바로 계급이 발생합니다. 지배받는 사람, 지배하는 사람. 그리고 이 시기에 대표적인 무덤이 고인돌입니다. 고인돌은 엄청나게 큰 돌을 사용하죠. 많은
02:23
Speaker A
사람들이 동원할 수 있는 지배자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그래서 청동기 시대 핵심은 계급 발생, 탁자식 고인돌, 또 하나 추가하자면 비파 모양의 청동검인 비파형 동검까지 파악하고 있으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 청동기 시대의 사회적 변화를 바탕으로 등장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가 고조선입니다.
02:46
Speaker A
건국 신화는 다들 잘 알고 있죠. 여기서 시험에 자주 나오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재정일치인데요. 이는 정치와 종교의 역할을 지배자가 함께 담당하는 것입니다.
02:59
Speaker A
고대 사회에서는 왕이 단순히 정치적 권력만 지니고 있는 게 아니라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종교적인 역할도 함께 담당하였습니다. 그래서 고조선의 단군 왕금을 이야기할 때 재정일치 사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겁니다.
03:14
Speaker A
그리고 고조선할 때 또 중요한 게 바로 8조법입니다. 이 8조법을 통해서 고조선 사회에서는 사유재산이 존재하고 계급도 있고 농업 사회이고 그리고 화폐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가 있는 거죠.
03:31
Speaker A
이제 철기 시대입니다. 철을 사용하면서 사람들의 생활은 다시 또 크게 발전합니다. 철제 농기구가 등장하면서 농업 생산력이 더욱 증가하였고요. 또 철제 무기를 사용하면서 전쟁에서도 큰 변화가 나타납니다.
03:48
Speaker A
농업 생산력이 증가하자 인구도 증가하고 그리고 전쟁이 증가하면서 그에 맞는 정치 세력도 성장한다는 겁니다. 결국 여러 지역의 정치 세력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더 큰 국가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마지막 단계에서 중요한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바로 위입니다.
04:08
Speaker A
중국에서 건너온 위마은 고조선의 왕이 되는데요. 위마은 중국에서 들어온 철기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후 철제 무기와 농기구를 사용하면서 고조선이라는 나라의 힘이 더욱 강해지게 만듭니다.
04:23
Speaker A
그리고 주변 지역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세력을 확대하게 되죠. 하지만 고조선이 점점 강해지자 중국의 한나라와 충돌하게 됩니다. 결국 한나라의 공격을 받아 고조선을 멸망하게 되는데요. 이 고조선의 옛 땅에는 한나라가 한사군이라는 행정 구역을 설치하게 되는데 한반도에 끝까지 남아 있던 한사군이 바로 낭랑군입니다.
04:47
Speaker A
부여에서는 왕이 모든 지역을 직접 통치한 것이 아니라 마가, 우가, 구가, 자가라고 불리는 세력이 각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04:57
Speaker A
이것을 사출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부여에는 연고라는 제천 행사가 있는데요. 제천 행사는 말 그대로 하늘의 제사를 지내는 행사입니다.
05:08
Speaker A
고구려 하면 가장 떠오르는 것이 바로 전투민족입니다. 주변 지역을 적극적으로 정복하면서 성장한 나라죠. 그리고 고구려에는 서옥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는데요. 이는 남자가 결혼한 뒤에 일정 기간 동안 여자의 집에서 생활하는 풍습입니다.
05:27
Speaker A
그리고 고구려의 제천 행사는 동맹입니다. 옥전은 고구려처럼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고구려의 지배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죠.
05:38
Speaker A
그래서 왕이 없고 업군이나 삼로라 불리는 군장이 각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옥제에는 독특한 풍습이 있는데요. 바로 민며느리입니다.
05:49
Speaker A
어린 여자아이를 며느리로 데려와 키운 뒤에 결혼시키는 풍습인데요. 그 요새이라면 큰나죠.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은 가족 공동 무덤이 있습니다. 죽은 사람을 바로 매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뼈를 수습해서 가족 공동 무덤에 넣는 풍습을 말합니다.
06:10
Speaker A
다음은 동예입니다. 동예 역시 왕이 없고 업군이나 삼로라 불리는 군장이 다스렸는데요. 그리고 동예는 책화라는 풍습을 알아야 됩니다. 이는 다른 부족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면 보복하는 풍습입니다.
06:28
Speaker A
그리고 특산물 가운데 유명한 것은 짧은 활인 단궁이 있고요. 동예에도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가 있습니다. 제천 행사를 정리하자면 부경고 고동무라고 외워 주세요. 마지막으로 사만입니다. 마한, 변한, 진난을 일컫는 나라인데 이는 재정분리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06:51
Speaker A
정치적인 일을 담당하는 군장과 종교적인 일을 담당하는 천군이 있습니다. 그리고 천군이 다스리는 신성한 지역을 소도라고 부릅니다.
07:02
Speaker A
소도는 신성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정치 권력이 쉽게 간섭하기 어려웠습니다. 여러 나라 가운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세력이 커지고 주변 지역을 정복하면서 강력한 국가로 발전하는 나라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고구려, 백제, 신라인데요.
07:23
Speaker A
흔히 삼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들은 처음부터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왕권이 약한 상태에서 점점 왕권을 강화하고 윤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받아들이고 지방을 통제하면서 고대 국가로 발전합니다.
07:42
Speaker A
그래서 왕 이름을 마냥 외우기보다는 이 왕이 어떻게 왕권을 강화하였는가를 중심으로 본다면 더 이해가 잘 될 거예요. 먼저 백제의 고이왕입니다.
07:53
Speaker A
고이왕 때 백제는 국가 체제를 정비하기 시작하는데요. 가장 중요한 것이 관등 제도 정비입니다. 관등은 쉽게 말하면 공무원의 직급 체계라 보면 됩니다. 나라가 커지면 왕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없으니 신하들을 여러 등급으로 나누고 국가의 행정을 체계적으로 운영합니다.
08:15
Speaker A
이것이 바로 관등 제도이고요. 그리고 고이왕은 마한을 공격하면서 백제의 세력을 확대합니다. 다음은 근초고왕입니다. 근초고왕 때에 백제는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먼저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였고요.
08:32
Speaker A
중국과도 교류하고 일본과도 교류하면서 백제 영향력을 넓힌 왕이며 특히 백제의 문화가 일본으로 전해진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08:44
Speaker A
다음은 무령왕입니다. 무령왕 때에는 다시 백제가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는데요. 특히 지방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22담의 왕족을 파견하였습니다.
08:57
Speaker A
왕이 중앙에서만 명령한다고 지방이 잘 움직이는 것은 아니겠죠. 그래서 왕과 가까운 왕족을 지방에 보내서 왕의 통치력을 강화합니다.
09:08
Speaker A
처음을 하자면 무령왕릉이 아주 유명한데요. 설명은 다음 기말 범위에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백제의 성왕입니다. 성왕은 백제의 수도를 사비로 옮기면서 백제의 중흥을 이끌었습니다.
09:23
Speaker A
성왕은 신라와 연합하여 한강 유역을 되찾았고 사이좋게 반반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신라 진흥왕의 공격으로 한강 유역을 잃게 되었으며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이제 고구려입니다.
09:40
Speaker A
고구려에서 가장 먼저 볼 왕은 소수림왕입니다. 소수림왕의 업적은 고구려가 강력한 국가로 발전하기 위한 국가 체제 정비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09:52
Speaker A
윤령을 반포하였고요. 불교를 수용하였으며 국가 교육 기관인 태학을 설립하였습니다. 광개토대왕은 이름 자체에 답이 있습니다. 영토를 크게 넓힌 왕이죠.
10:04
Speaker A
광개토대왕은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이북 지역까지 진출하였고 동쪽과 북쪽으로도 세력을 확대했습니다. 만주와 요동 지역을 대부분 차지하였고요.
10:17
Speaker A
광개토대왕 때에 신라의 외군이 침입하자 신라를 도와주기도 합니다. 다음은 장수왕입니다. 아버지인 광개토대왕이 영토를 크게 넓혔다면 장수왕은 그 넓어진 영토를 바탕으로 고구려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한 왕입니다.
10:35
Speaker A
가장 먼저 기억할 것은 평양 천도입니다. 고구려의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겼는데요. 고구려의 남진 정책을 뒷받침하는 정책입니다.
10:49
Speaker A
특히 장수왕은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유역 전체를 장악하게 됩니다. 신라 먼저 내물왕입니다. 내물왕 때부터 신라에서는 김씨가 왕위를 세습하기 시작합니다.
11:04
Speaker A
이게 또 중요한 게 뭐냐면 왕이 계속 다른 성씨로 바뀌는 것보다 특정 가문에서 왕위를 계속 이어받는 것이 왕권을 강화하는 데 유리하겠죠.
11:15
Speaker A
그리고 내물왕 때에는 왕을 부르는 칭호가 마립간으로 바뀝니다. 다음은 지증왕입니다. 지증왕대는 신라의 국가 체제가 한 단계 더 발전하는데요.
11:26
Speaker A
신라는 국호를 사용하였고요. 왕의 칭호도 이제 왕이라 부릅니다. 이제 신라의 고대국가 발전에서 정말 중요한 왕이 있는데 바로 법흥왕입니다.
11:38
Speaker A
먼저 금관 가야를 정복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군사 조직인 병부를 설치하고요. 또 귀족 세력을 대표하는 관직인 상대등을 설치합니다.
11:50
Speaker A
그리고 윤령을 반포하고요. 불교를 공인합니다. 또 관리들이 입는 옷인 공복의 색깔과 등급을 정했습니다. 이는 관리들의 지위와 서열을 명확하게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법흥왕 다음에 등장하는 왕이 진흥왕입니다.
12:08
Speaker A
법흥왕이 국가의 내부 체제를 정비했다면 진흥왕은 그렇게 정비된 국가의 힘을 바탕으로 영토를 크게 넓혔습니다. 진흥왕은 화랑도를 국가적인 조직으로 개편하였습니다.
12:22
Speaker A
신라의 인재를 양성하고 국가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게 바로 화랑도입니다. 그리고 진흥왕 하면 가장 중요한 사건이 한강 유역 장악입니다.
12:36
Speaker A
앞에서 백제의 성왕 배웠죠. 성왕과 함께 힘을 합쳐 가지고 고구려로부터 한강 유역을 되찾았으나 이번에는 백제 뒤통수를 치고 한강 유역을 신라가 차지합니다.
12:51
Speaker A
그래서 진흥왕을 보면 한강 유역 전체 장악을 잘 기억하세요. 이 사건 때문에 백제와 신라의 관계가 크게 나빠집니다.
13:00
Speaker A
진흥왕의 영토 확장은 한강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쪽으로는 대가야를 정복했고요. 그리고 북쪽으로도 영토를 확대하게 되는데 신라가 북쪽으로 얼마나 진출했는지 보여주는 유물이 바로 단양 신라 적성비와 진흥왕 순수비입니다.
13:20
Speaker A
순수비라는 것은 왕이 새롭게 확보한 영토를 직접 돌아다니면서 이 지역은 신라 영토라는 사실을 알리는 성격의 비석입니다.
13:31
Speaker A
이러한 진흥왕의 업적을 쉽게 외우기 위해서는 한화 순수 대단이라 외우면 되겠어요. 한화 야구를 보면 한때 꼴찌의 대명사였으나 팬들의 순수한 응원과 사랑 덕분에 2025년 한국 시리즈에도 진출한 거 보니 정말 대단합니다.
13:51
Speaker A
롯데의 한국 시리즈 아니 플레이오프는 언제쯤 해 볼 수 있을까요? 신라의 한강역 전체 장악 때문에 백제와 신라의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14:05
Speaker A
먼저 백제가 신라를 공격하고요. 위기를 느낀 신라는 당나라와 동맹을 맺게 됩니다. 나당 동맹이 체결된 이후 신라와 당은 백제를 먼저 공격하고요.
14:17
Speaker A
백제 멸망 이후 이어서 고구려를 공격합니다. 당시 고구려는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입을 여러 차례 막아냈던 강력한 국가였으나 광개토대왕이 죽은 뒤 고구려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고구려는 나당연합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멸망합니다.
14:38
Speaker A
그러면 이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걸까요? 아닙니다. 아직 한 단계 남아 있습니다. 처음에 신라와 당나라는 힘을 합쳤으나 당나라는 순순히 한반도를 그냥 신라에게 넘겨주진 않습니다. 당나라는 한반도까지 직접 지배하려고 하는데요. 이제는 나당 전쟁이 벌어집니다.
15:01
Speaker A
나당 전쟁에서 신라는 당나라를 몰아내기 위해 여러 전투를 벌이는데요. 유명한 전투가 매소성 전투, 기벌포 전투가 있습니다. 이 전쟁 과정에서 통일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과 힘을 합친 다음에 당나라군을 몰아냅니다.
15:21
Speaker A
그러면 신라의 삼국 통일은 완벽한 통일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두 가지 한계가 있는데 첫 번째는 당나라의 힘을 끌어들였다는 것입니다.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당나라의 군사력을 이용했다는 거죠.
15:38
Speaker A
두 번째 한계는 대동강 이남의 영토만 확보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의 옛 영토 전체를 신라가 차지한 것이 아닙니다. 대동강 이북의 고구려의 영토는 그 이후 발해가 차지하게 됩니다. 따라서 신라의 삼국 통일은 한반도 전체를 완전히 통합한 통일은 아니었다는 한계가 있죠.
16:03
Speaker A
그렇다면 신라의 삼국 통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 그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적 의미가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신라는 나당 전쟁을 통해서 어쨌든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냈다는 것입니다. 당나라를 몰아냄으로써 당나라가 한반도를 차지하는 것을 막아냈고 자주적인 통일을 완성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16:27
Speaker A
두 번째 의미는 삼국이 통합되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의 문화가 함께 융합되면서 새로운 민족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라의 삼국 통일이 갖는 중요한 의미입니다.
16:46
Speaker A
이제부터는 통일 이후 신라가 어떻게 나라를 운영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통일신라 역사는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전기에는 왕권이 강해지고 국가 체제가 안정됩니다.
17:01
Speaker A
반대로 후기에는 귀족들의 왕위 다툼이 심해지고 지방 세력이 성장하면서 나라가 점점 흔들리게 됩니다. 먼저 태종 무열왕입니다. 이전 신라에서는 성골 출신의 왕이 왕위를 계승했는데 성골이 없어지면서
17:27
Speaker A
됩니다. 다음은 삼국 동일를 완성한 문무왕입니다. 문무왕 때 신라가 당나라와 싸워서 결국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삼국 통일을 완성하였습니다.
17:44
Speaker A
다음 통일 신라에서 왕권을 크게 강화한 왕이 신문왕입니다. 신문왕 때에는 김흠돌의 난이 발생하게 되는데 김흠돌은 신문왕의 장인 어른으로서 진골 기족으로 상당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문왕은이 김험돌의 난을 진압하고 그와 연결되어 있던 진골 귀족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합니다.
18:10
Speaker A
그러면 신문왕을 비롯한 통일신라의 왕들은 이렇게 넓어진 통일신라를 어떻게 통치하였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중앙입니다. 중앙에는 왕의 명령을 전달하고 국가의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집사부가 있었으며이 집사부의 책임자가 시중입니다.
18:31
Speaker A
또 다른 관리들이이를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고 잘못을 조사하는 사정부라는 감찰 기관이 있었고요. 교육 기관으로는 국학이 있습니다.
18:42
Speaker A
이제 지방을 살펴보겠습니다. 통일신라는 영토가 넓어졌기 때문에 수도인 경주만으로 전국을 관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지방을 구주로 나누어 통치하였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소경입니다.
18:58
Speaker A
수도가 있는데 지방에 또 다른 작은 수도를 만든 이유는 신라의 수도인 경주가 한반도 동남 쪽에 지우쳐져 있었기 때문에 전국을 통치하기에는 지리적으로 불리한 위치였습니다.
19:12
Speaker A
그래서 전국 여러 지역에 소경이라는 작은 수도를 설치해서 수도 경주의 지리적 약점을 보완하였으며 동시에 각 지역이 고르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9:26
Speaker A
군사 제도는 중앙에는 구서당, 지방에는 십정이라는 지방군이 있으며 나중에 통일신라 후기에는 이제 진골 귀족들의 왕이 다툼이 벌어지면서 점차 나라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19:43
Speaker A
대표적인 진골 귀족들의 왕위 다툼이 뭐냐면 김원창의 난인데요. 지방의 유력한 진굴 기족이 중앙 정부에 반발하면서 반란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19:56
Speaker A
근데 문제는 귀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이 국가의 통치력이 약해지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면서 농민들의 생활도 어려워졌고요. 이러한 농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봉기하게 됩니다.
20:10
Speaker A
중앙 정부는이 지방의 농민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고요. 신라는 점점 중앙에서 지방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20:20
Speaker A
이때 등장하는 세력이 지방의 호족입니다. 호족은 지방에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며 중앙 정부의 힘이 약해지니까 지방에서 스스로 군사력을 갖추고 백성을 지배하는 세력이 되었습니다.
20:37
Speaker A
나중에이 호족들이 후삼국 시대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세력이 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세력은 바로 육두품인데요. 육두품은 신라의 골품제에서 상당히 높은 신분이었지만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진골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20:58
Speaker A
그래서 육두품 지식인들은 골품제의 한계에 좌절하게 됩니다. 더욱 새로운 사회를 요구하는 세력으로 바뀌게 되는 거죠.
21:08
Speaker A
최치원 같은 육두품 지식인이 대표적이며 이러한 세력들이 나중에 후삼국을 건국하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통일신라가 한반도 남쪽에서 발전하고 있을 때 북쪽에서는 새로운 국가가 등장하니 바로 바레입니다.
21:27
Speaker A
바레는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 유민과 말갈 세력이 함께 건국한 나라인데요.이 건국한 사람이 대조영입니다. 대조영은 고구려 유빈이 지배층이며 말갈조기 피지배층인 나라인 바레를 건국하였고요.
21:45
Speaker A
그래서 바레가 고구려의 개승국과라는 점을 설명할 때 고구려 유민이 중심이었다라고 보면 되겠습니다.이어서 발해 무왕은 당과 대립하고 당을 공격한 왕이었으며 그다음 문왕은 당과 친성관계를 유지한 왕입니다.
22:05
Speaker A
그리고 바레의 전성기를이 왕은 선왕입니다. 중국으로부터 해동 선국이라는 그런 별명으로 물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발에도 영원히 이렇게 잘 나가지 못합니다. 나중에 거한족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게 되죠.
22:26
Speaker A
마지막으로 바레가 어떤 체제를 가지고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바레의 중앙 통치 제도에서는 중국의 당나라 제도인 삼성육부제를 수용하였으나 그대로 따라한 건 아니에요. 발해만의 독자적인 운영 방식을 감의하였으며 그리고 전국을 5경 15부 62주로 나누어 지방을 통치하였습니다.
22:54
Speaker A
보3국에는 기존의 통일신와 견원의 후백제, 궁해의 후고구려가 있습니다. 궁해는 이후 국호를 태봉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궁해가 지나치게 강압적인 정치를 하면서 신하들의 불만이 커집니다.
23:10
Speaker A
누구인가? 결국 궁해가 쫓겨났고 새로운 인물인 왕건이 왕위에 오릅니다. 바로 고려의 태조 왕건이죠. 왕건은 송학 지역의 호족 출신이며 다른 호족 세력들을 포용하면서 세력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23:29
Speaker A
그 후 신라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후백제를 멸망시키면서 후삼국을 통일하였습니다. 고려라는 나라 이름 자체에서부터 알다시피 고구려를 개승하는 것을 중시하였습니다.
23:42
Speaker A
북진 정책을 주진하였고요. 그 과정에서 지금의 평양인 석경을 중요시 여겼습니다. 그리고 훈료 10십조는 왕근히 죽기 전에 후대왕들에게 남긴 정치적인 가르침이라 보면 되겠는데요. 특히 불교를 중요시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24:01
Speaker A
다음 광종입니다. 고려 건국에는 여러 호족 세력의 도움이 컸기 때문에 건국 초기에는 호족들의 힘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24:11
Speaker A
그래서 왕권 광화가 고려 초기 왕들의 숙제했는데요.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왕이 광종입니다. 광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실시한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노비 안검법이 있습니다.
24:27
Speaker A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조사해서 양인으로 되돌려주는 제도입니다. 당시 호족들은 많은 노비를 가지고 있었는데요.이 이 노비는 노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에 호족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24:43
Speaker A
그런데 광종이 노비를 일반 백성인 양인으로 돌린다면 호족의 경제적 군사적 기반이 약해지는 반면에 왕에게는 세금을 내고 군력을 부담할 수 있는 백성이 늘어난다는 거죠.
24:58
Speaker A
그래서 노비 안건법은 단순히 노비를 해방시키는 정책이 아니라 호족의 힘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25:09
Speaker A
다음 광종의 중요한 업적으로는 과거제가 있습니다. 중국의 후주에서 건너온 쌍이라는 사람이 건의한 제도인데요. 시험을 통해 관리를 뽑는다는 것입니다.
25:21
Speaker A
왕이 직접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 자신의 신하로 만들 수 있으니 왕에게 충성하는 관료 집단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왕권이 강화될 수 있다는 거죠.
25:33
Speaker A
다음은 성종입니다. 성종에게는 중요한 인물이 있는데 바로 최승로입니다. 최승로는 성종에게 유교 이념을 국가 통치의 중요한 원리로 받아들 수 있도록 권의를 합니다. 시무 28조가 유명합니다.
25:52
Speaker A
그리고 전국 주요 지역에 12을 설치하여 지방관을 파견합니다. 이제 중앙 정부가 지방을 직접 동지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죠.
26:03
Speaker A
이제 고려가 국가를 어떻게 운영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고려의 중앙 정치 조직은 이성 6육부를 기본으로 합니다. 중서문화성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국정을 총괄하는 기관입니다.
26:20
Speaker A
상서성은 실제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그 아래에 육보가 있습니다. 중추원은 왕의 비서 역할을 하면서 군사 기밀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였으며 어사되는 관리들을 감찰하였습니다.
26:37
Speaker A
고려의 삼사는 화폐와 곡식의 출납을 담당하는 회계 기관입니다. 그리고 고로에는 도병 마사와 식도감이라는 특별한 회의 기구가 있는데 도병 마사는 군사 문제를 논의하는 기구이며 식목 도감은 국가의 법과 제도에 관한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였습니다.
27:00
Speaker A
고려의 지방행정은 조선과 상당히 다릅니다. 먼저 기억할 것은 5도와 양계인데요. 오도는 일반적인 행정 구역이며 양계는 국경 지역입니다.이 이 양계는 북괴와 동계로 나뉘는데요.
27:16
Speaker A
외적의 침입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군사적인 통치가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양계에는 병마사라는 관리를 발견하였으며 일반 행정 구역인 5도에는 안찰사를 발견하였습니다.
27:33
Speaker A
고려의 수도 주변에는 경기가 있고요. 지방에는 일반적인 행정 구역뿐만 아니라 특별한 행전 구역이 있으니 향 부곡 소입니다.
27:44
Speaker A
특히 소는 수공업이나 특정 생산물을 담당하는 지역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려의 지방행정은 단순히 전국을 똑같이 나눈 것이 아니라 지역의 성격에 따라 여러 형태로 구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28:02
Speaker A
두현은 지방관이 파견된 지역이며 속현은 지방관이 직접 파견되지 않은 지역입니다. 고려 초기에는 모든 지방의 중앙에서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방 세력의 영향력이 상당히 강했음을 알 수가 있죠.
28:21
Speaker A
이제 국가에서 일할 권리를 어떻게 뽑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과거입니다. 과거에는 문과, 잡과, 승과가 있고요. 문과는 주로 유학 관련 시험이었으며 잡과는 기술과 분야의 시험, 승과는 승려를 대상으로 한 시험입니다.
28:41
Speaker A
근데 고르에는 시험만 있는게 아니라 음라는 제도도 있는데요. 음선은 시험을 보지 않고도 부모나 조상의 신분과 공로를 바탕으로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제도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이는 고려 사회가 상당히 기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죠.
29:02
Speaker A
고려의 대표적인 국가 교육 기관으로는 국자감이 있습니다. 고려 전기에는 왕권이 점차 강화되고 국가의 제도도 정비되었습니다.
29:13
Speaker A
그런데 고려 사회를 실제로 움직인 데는 문벌 기족의 힘이 상당히 강했는데요. 문벌이란 것은 쉽게 말하면 대대로 높은 관직에 진출하면서 정치적 경제적 특권을 누리는 귀족 과문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29:29
Speaker A
이러한 문벌 기족들은 서로 혼인 관계를 맺으면서 권력을 장악해 나갔는데요.이 문벌 기족 사회의 대표적인 인물이 이자겸입니다.
29:40
Speaker A
이자겸은 단순한 기족이 아니라 왕실의 외척이었습니다. 자신의 딸들을 왕과 혼인시켜 강력한 관계를 맺었으며 이자겸은 나중에는 왕보다도 더 강한 권력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인종이 이자겸을 제거하려 했고이 과정에서 이자의 난이 발생합니다. 결국 이자의 난은 진압되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벌 기족의 권력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30:10
Speaker A
알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자의 난이 끝났다고 해서 고려 사회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묘청의 석경 천도 운동이 발생하게 되는데요.
30:25
Speaker A
묘청은 석경 지금의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수도를 옮기자는 행정적인 주장이 아니에요. 당시 고려의 수도는 개경이었습니다.
30:38
Speaker A
그런데 묘청과 정지상 등은 석경을 중요시 여겼으며 석경으로 수도를 옮기고 북진 정책을 주진하자는 주장이었던 거죠. 이에 반대하는 세력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부식이 있습니다.이 김부식의 의견이 막강하자 결국 묘청은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이지 않자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묘청인 아니죠.
31:06
Speaker A
하지만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이 승리하면서 묘청의 나는 진압되었고요.이 묘청의 나는 서경 중심의 북진 세력과 개경 중심의 보수적인 문벌 세력의 대립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31:22
Speaker A
이렇게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배워봤는데이 사건으로 알다시피 고려의 문벌 사회가 흔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1:32
Speaker A
그런데 더 큰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요. 바로 부신정변입니다. 당시 고려 사회에서는 문신들이 정치적으로 높은 대우를 받았으며 반면에 무신들은 차별을 많이 받았어요.
31:47
Speaker A
무신들이 군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치적으로는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자 불만이 점차 커졌고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켰습니다. 이제 무신 정권이 시작되는 거죠. 그 이후에 여러 무신들이 권력을 놓고 서로 싸우다가 결국 최충원 중심으로 한 최시 가문의 정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32:10
Speaker A
최시 정권은 상당히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하게 되는데 그 요인으로는 자신들만의 권력 기구와 군사 조직을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32:21
Speaker A
먼저 교정도감은 최시 정권의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기구입니다. 정방은 인사권을 장악하였으며 어 누가 어떤 관직에 임명될지를 결정하는 곳입니다.
32:36
Speaker A
서방은 문신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최시 정권의 정척을 자문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도방은 최시 정권의 사병 조직이며 야별는 군사 조직인데이 야별가 나중에 확대된 것이 삼별초입니다.
32:58
Speaker A
무신여권이 들어섰다고 해서 일반 백성들의 생활이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며 농빈과 천민의 불만이 커지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망이 망소위에 나니다.이 이 사람들은 공주 명학소라는 특수 행정 구역의 사람들이었으며 향부곡소 같은 특수 행정 구역에 사는 사람들은 일반 농민보다 사회적으로
33:24
Speaker A
차별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에 반발하여 봉기한 것입니다. 또 기억해야 될 사람은 만족인데요.이 만적은 산업이었습니다.
33:35
Speaker A
신분 차별에 반발하여 봉기를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면서 실제 봉기로 이어지지는 못했어요. 이제 국외의 시각으로 살펴보면 몽골은 당시에 동아시아에서 엄청나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몽골이 고래를 침입한 거예요. 이제 고래는 몽골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34:00
Speaker A
몽골은 김화병 중심의 군대였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려 정부는 육지에서 강화도로 옮기고 장기간 항전을 합니다.
34:12
Speaker A
하지만 전쟁이 계속되면서 최시 정권은 붕괴하게 되었고 최시 정권이 무너진 뒤에 고려 정부는 몽골과의 관계를 다시 이제 좋게 만듭니다.
34:24
Speaker A
그래서 몽골과 강화를 맺게 되고 전쟁은 끝나게 되죠. 스도도 다시 개경으로 돌아갑니다. 고려는 오랫동안 몽골에 저항했지만 결국 몽골과 강화를 맺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난게 아닙니다. 고려는 몽골의 간섭을 받게 되고요. 이때 몽골이 중국을 정복하고 세운 나라가 바로 원입니다.
34:49
Speaker A
고려는 원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 고려왕이 원황실의 공주와 결혼을 하였기 때문에 부마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35:01
Speaker A
원은 고려를 직접 없애 버리고 자기 나라의 한 지방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고려라는 나라를 그대로 두었죠. 하지만 고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만든 기구가 정동행성입니다.
35:18
Speaker A
그리고 고려의 일부 영토도 원에게 빼앗깁니다. 화주 지역에 쌍성 총관부, 석경 지역에는 동영부, 제주도에는 탐라 총관부를 설치합니다.
35:31
Speaker A
그리고 고려 왕실의 지위와 호칭도 낮춥니다. 즉 고려의 왕이 독립적인 황제와 같은 존재로 되어받지 못하고 원황제보다 낮게 위치한다 이거죠.
35:45
Speaker A
원관습기에는 고려 사람들이 원나라로 많이 끌려갔었는데 대표적으로는 공려와 환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려가 원의 간섭을 받았다고 해서 고려의 왕들이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닙니다. 대표적인 왕으로는 충렬 왕이 있는데이 충렬 왕은 원과의 관계 속에서도 고려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 왕입니다. 대표적으로는 동령부와 탐라
36:12
Speaker A
총관부를 다시 고려가 돌려받을 수 있도록 일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원의 간섭이 시작되면서 고려 사회의 지배층에도 큰 변화가 나타납니다. 바로 권문 세족의 성장인데요.
36:27
Speaker A
이들은 원가의 관계 속에서 성장한 새로운 지배층입니다. 원과 가까운 관계를 맺으면서 정치적 경제적 특권을 누렸고요.
36:38
Speaker A
이들도 고려의 전통적인 기족들과 마찬가지로 음설을 통해 관직에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농장을 확대했다는 것인데요.이 농장은 쉽게 말하면 대규모의 토지를 권력자가 소유한다는 겁니다. 권문 세족은 권력을 이용해서 토지를 계속 넓혀 나갔고요. 농민들은 토지를 빼앗기거나이 권문 세족의 농장에 예속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37:07
Speaker A
그런데 고려 후기에 아주 중요한 왕이 등장하는데요. 바로 공민왕입니다. 공민왕은 지금까지 원회 간섭을 받던 고려를 다시 자주적인 국가로 만들려고 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반원 개혁 정치라고 볼 수 있어요.
37:24
Speaker A
공민왕이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은 기시쪽 제거입니다. DC쪽은 원황실과 연결되어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었는데 공민왕은 이들을 제거하면서 친원 세력을 많이 약화시켰습니다.
37:40
Speaker A
그리고 정동행성의 이문서를 배지하게 되었는데요. 정동행성은 원이 고려의 내정에 간섭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라고 하였는데 정동행성 전체를 폐지한 것이 아니라 그 밑에 있는 산하 기구인 이분소를 폐지했다는 점 잘 구분해 놓읍시다.
38:00
Speaker A
그리고 앞에서 원에게 빼앗기 영토 그중에 이제 돌려받지 못한 쌍성 종관부를 공격해 가지고 다시 되찾아왔습니다.
38:10
Speaker A
그리고 공민왕은 정치 제도만 바꾼 것이 아니라 고려 왕실의 호칭도 다시 높혔고요. 원의 영향을 받은 몽골풍도 금지합니다.이는 고려가 원에 영향을 받는 나라가 아니라 독립적인 국가라는 것을 다시 어필하기 위해서죠.
38:28
Speaker A
그리고 공민왕은 국내 개혁도 추진합니다.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 변정 도감을 설치하게 되는데이는 부당하게 빼앗긴 토지와 강제로 노비가 된 사람들을 바로잡기 위한 기구입니다.
38:43
Speaker A
당시 권문 세족들이 불법적으로 토지를 빼앗거나 사람들을 노비로 만들자 공민왕은이를 바로잡기 위해서이 전민 변정도감을 설치한 거죠.
38:55
Speaker A
공민왕은 성균관도 정비하게 되었는데요.이 성균관에서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성장한 사람들이 신진 사대부입니다. 신진 사대부들은 성리학을 공부하면서 기존의 권문 세족을 비판하였으며 공민왕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면서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39:17
Speaker A
공민왕의 개혁을 외우기 힘들다면 어 새로운 또 암기법 알려 주겠습니다. 여러분 중학교 가정 시간에 청소년기에 2차 성 배웠죠? 그때 배웠던 걸 인용해 보자면 아까 고려 과거를 건의한 사람이 누구라 그랬죠? 쌍기.
39:35
Speaker A
쌍기가 청소년이 되면서 몽정을 하고 변성기가 왔어요. 그 다시 말하지만 중학교 가정교과서에서 배운 학술적 용어를 사용한 겁니다.
39:48
Speaker A
자, 이제 고려의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공비당의 개혁 이후 고려 사회에서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성장하게 되는데 그 아까 말한 신진 사대부예요.
39:59
Speaker A
이들은 국제적으로는 원이 약해지고 새로운 강대국인 명나라가 등장하자 명나라와의 관계를 중요시 여겼으며 그런데이 신진 사대부들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지닌 건 아닙니다.
40:14
Speaker A
온건파는 고려의 기존 왕조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개혁하자고 주장했고요. 반면에 급진판은 기존 고려 왕조가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라고 주장합니다.
40:27
Speaker A
또 다른 세력은 신흥 무인 세력이에요. 고려 후기에는 북쪽에서는 홍건적의 침입, 남쪽에서는 외구의 침입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외적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군사적 능력을 지닌 새로운 무인 세력이 성장하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성계입니다.이 이성계와 급진적인 신진 사대부들이 손을 잡게 되는데 대표적으로는 정도전
40:54
Speaker A
같은 인물이 있겠죠. 이들은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 결과 등장한 국가가 바로 조선입니다.
41:05
Speaker A
조선은 고려와는 다른 새로운 국가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가 바로 유교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은 거죠.
41:15
Speaker A
태조 때 수도를 한 양으로 옮깁니다. 그런데 조선을 세우는데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 있는데요. 바로 정도전입니다.
41:24
Speaker A
정도전은 왕이 잘못된 판단을 할 경우 신하들이이를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능력 있는 재상이 국정을 운영하고 왕은 그 위에서 정치 중심을 잡는 형태를 생각했습니다.
41:40
Speaker A
다음 왕은 태종입니다. 태종은 정전과 정치적으로 대립합니다.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안정시키려면 왕이 강한 권력을 가지고 직접 정치를 해야 한다라고 생각을 했기에 정도 세력을 제거하고 자신이 주도하는 강력한 왕권을 구축합니다.
41:59
Speaker A
태종이 왕권을 강하기 위해 실시한 대표적인 제도가 6조 직계제입니다. 에서 처리한 중요한 행정 사항을 재상을 거쳐 왕에게 보고한 것이 아니라육조가 왕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한 제도입니다. 그러면 왕이 국가 행정을 직접 통제할 수 있겠죠.
42:18
Speaker A
그리고 나라가 백선과 토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양전을 실시하는데 양전은 토지를 조사하고 측량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토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세금을 제대로 걷기 때문이죠.
42:34
Speaker A
그리고 오늘날의 신문증 같은 호폐법을 실시합니다. 세종은 태종이 강화해 놓은 왕권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유교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42:47
Speaker A
세종은 왕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한 왕은 아닙니다. 신하들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의견을 듣는데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경년입니다.
42:58
Speaker A
지편은 학문 연구와 정책 자문을 담당한 기관이며 뛰어난 학자들을 모아 학문을 연구하게 하고 왕의 정책에도 도움을 주도록 하였습니다.
43:09
Speaker A
세종때 정치 운영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도 있습니다. 바로 의정부 서사제인데요. 세종은 태종처럼 왕이 육조의 모든 업무를 직접 처리하기보다는 의정부에서 국정을 논의하고 조의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을 활용하였습니다.
43:27
Speaker A
그리고 훈민정음 창제 조선 기후에 맞춘 농사책인 농사직설 발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조가 직유하면서 정치 운영 방식이 다시 바뀝니다. 세조는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였기에 다시 6조 직계제가 실시됩니다.
43:47
Speaker A
그리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신하들의 언론 활동을 제한하였으며 지편전과 경연을 없애 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종입니다. 성종 때 조선의 통치 체제가 상당히 완성되는데요.
44:02
Speaker A
성종은 다시 유교적인 정치 운영을 강화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홍문관입니다. 홍문관은 왕에게 학문과 정책에 관한 자문을 하는 기관입니다. 그리고 경년도 다시 활성하게 되며 성종 때 가장 중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국대전을 완성한 것입니다. 전국 대전은 조선의 국가 운영에 필요한 법과 제도를 정리한 법전입니다.
44:31
Speaker A
조선의 중앙에는 여러 관청이 있었는데 먼저 의정부입니다. 의정부는 조선의 중요한 국정을 논의하고 총괄하는 기관입니다. 앞에서 세종 때 배운 의정부 사사제 기억나죠?
44:45
Speaker A
승장호는 왕의 명령을 전달하고 왕에게 올라오는 각종 보고를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의근부는 왕명에 따라 중죄인을 조사하고 처벌하는 사법 기관입니다.
44:59
Speaker A
춘추관은 역사 기록과 관련된 기관이며 성균관은 유교와 성리학을 공부하는 조선의 최고 교육 기관이었습니다. 다음은 수도 서울의 행정과 제한을 담당하는 한 성부가 있었고요.
45:15
Speaker A
이제 조선 정치에서 굉장히 중요한 기간 나옵니다. 바로 3사입니다. 삼사는 사헌부, 사관원, 홍문관이 세 개의 기관을 묶어서 부르는 말입니다.
45:28
Speaker A
근데이 기관의 이름을 단순하게 외우기보다는 왕과 관리를 견제하는 언론 기관이었다는 것을 잘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요. 사헌부는 관리들의 잘못을 감찰하고 사간은 왕에게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간원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홍문과는 왕에게 학문과 정책을 자문하면서 언론 기능도 담당하였습니다.
45:54
Speaker A
고려의 회계 기관이었던 삼사와 달리 조선의 삼사는 언론 기관이었다는 점 잘 알아둡시다. 이제 지방 구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46:06
Speaker A
조선은 전국을 8도로 나누었고요. 각 도에는 관찰사를 파견하였습니다. 관찰사는 그 도의 행정과 군사, 감찰 등을 담당하는 최고 책임자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46:20
Speaker A
그리고 조선 지방 통치에서 중요한 특징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모든 군년의 수령을 파견했다는 것인데요.
46:27
Speaker A
수령은 지방의 행정을 직접 담당하는 관리입니다. 조선은 지방에 대한 중앙 정부의 통제를 강화해서 고려와 다르게 모든 군년의 수령을 파견했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거죠.이는 이는 중앙정부가 지방까지 직접 통제한다는 힘이 강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46:49
Speaker A
그런데 지방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수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지방에는 그 지역에서 영향력이 강한 양반들도 있는데요. 이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조직이 유향소입니다.
47:03
Speaker A
유향소는 지방의 유력한 양반들이 모여 향촌의 여러 일을 논의하고 지방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관여하였습니다. 다음은 관리 선발 제도로는 과거가 있습니다. 조선의 과거에는 문과, 무과, 잡과가 있고요. 조선에도 음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려와 다른게 뭐냐면음 혜택이 훨씬 제한적이었어요.
47:30
Speaker A
높은 관직에 올라가려면 무조건 문과 합격을 해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그럼 이렇게 과거에 합격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죠. 조선에도 여러 교육 기관이 있습니다. 먼저 중앙 교육 기관으로는 조선의 최고 교육 기관인 성균관이 있고요. 사부학당은 한성에 설치된 중등 교육 기관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47:56
Speaker A
지방에는 국가에서 설치한 교육 기관인 향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에는 국가가 운영하는 교육기가만 있는 건 아니에요.
48:06
Speaker A
민간에서 운영하는 서원과 서당이 있습니다. 서원은 성리학을 연구하고 선현을 제사 지내는 기능을 가진 사립 교육 기간이며 서당은 초등학교 수준에 그런 기초적인 유교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입니다.
48:25
Speaker A
훈구파는 쉽게 말하면 조선 조이 왕조를 세우고 왕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입니다. 특히 세조가 왕위에 오른 과정에서 도움을 준 공신 세력이 중심이 됩니다. 이들은 국가에서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높은 관직과 토지 등을 받으면서 막대한 권력을 가지게 되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정치와 경제력을
48:49
Speaker A
독점하게 됩니다. 근데 이와 반대로 훈구파와 다른 세력이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사림입니다. 하림은 주로 지방에서 성장한 유학자들이며 이들은 성리학을 공부하면서 유교적인 이상 정치를 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훈구파처럼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비판하였고요.
49:12
Speaker A
처음에는 지방에서 학문을 연구하면서 활동했지만 점차 중앙 정치에 진출하기 시작하는데 특히 사에만이 임명됩니다. 아까 삼사 배웠었죠.이 이 삼사는 훈구 세력의 잘못을 비판하고 왕에게 간원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였습니다.
49:33
Speaker A
그러다 보니 훈구와 사림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고요. 이제이 갈등들이 격해지면서 사림들이 큰 피해를 입는 사건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을 사화라 부릅니다.이 이 사화는 무호사화, 갑자 사화, 기묘사, 을사 사화 이렇게네 가지가 있는데 그 잘 안 외어지면 앞글자만 따서 무갑기 이렇게 외우면 되겠습니다.
49:58
Speaker A
첫 번째는 무호사화입니다. 연상군 때에 김종직이라는 사림이 조의 재문이라는 글을 썼는데 훈구파는이 글을 문제삼으면서 훈구파는이 글을 문제 삼으면서 사림 세력이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50:18
Speaker A
그리고 연산군 때에 또 하나의 사화가 발생하는데 갑자 사입니다. 여산군의 친어머니인 페비 윤시와 관련된 사건인데이 일과 관련해서 살인뿐만 아니라 훈구 세력까지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50:36
Speaker A
다음은 중종때 김묘사화입니다.이 이 연산군의 폭정으로 인해서 중종 반정이 발생하여 중종이 왕위에 올랐고이 중종은 새로운 세력인 사림들을 많이 등용하게 되었는데 핵심 인물이 바로 조광조입니다.
50:53
Speaker A
조광조는 기존에 부패한 정치 질서를 개혁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실시하게 되었는데 첫 번째는 현량과입니다. 혈량과는 학문과 인품이 뛰어난 인재를 추천받아 관리로 선발하는 제도입니다.
51:09
Speaker A
두 번째 개혁은 공훈 삭제인데요. 공신들 가운데 실제 공로가 크지 않은 사람들의 공훈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51:19
Speaker A
그런데이 공신 세력은 대부분 훈구파였고 이에 반발한 훈구파가 중종과 함께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 세력을 공격하였는데 이것을 갖다가 기묘사라 부릅니다.
51:33
Speaker A
마지막은 을사 사화입니다. 명종 때 외척 세력이 권력을 놓고 다투는 과정에서 사림이 다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51:43
Speaker A
이렇게 사화가네 번이나 발생했다면 사림은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사립은 지방으로 내려가서 다시 힘을 키웁니다.
51:54
Speaker A
중앙정치에서 피해를 입은 사림은 지방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양성하며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중앙 정치에 진출하게 되는데 사림이 지방에서 세력을 키우는데 중요한 역할한 것이 바로 서원과 향약입니다.이 서원은 단순한 학교가 아니에요.
52:16
Speaker A
성리학을 연구하고 제자들 양상하면서 자신들의 학문적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향약을 통해 지방 사회의 규칙과 질서를 유지하면서 향촌 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였습니다.
52:32
Speaker A
결국 사림은 여러 차례의 사화를 겪었지만 완전히 제거되진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영향력을 키운 다음에 마침내 중앙 정치에서 이제 중요한 세력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52:46
Speaker A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는데이 사립 내부에서도 의견 차이가 발생합니다. 이것이 붕당으로 이어지게 되는데요. 붕당이란 정치적 견해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정치 집단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처음에는 이조 전랑이라는이 자리에 임명 문제를 놓고 갈등이 벌어집니다. 이조 전랑은 3사의 관리를 선발하는 중요한 권한을
53:12
Speaker A
가진 자리였는데 누가 이조 전랑이 되느냐 이게 중요한 이슈였고요.이 이 문제를 둘러싸고 김효원과 심의염이 대립하게 되는데 김효원 쪽의 사람들을 동인이라 부르고요. 심의겸 쪽의 사람들을 서인이라 부릅니다. 이것이 조선의 붕당 정치가 시작되는 출발점입니다.
53:35
Speaker A
사립이 성장하고 붕당이 형성되면서 조선에 엄청난 위기가 찾아옵니다. 바로 외란이죠. 당시 일본을 통일한 인물은 도요토미 이도시였는데 그가 일본을 통일한 뒤에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중국으로 가려면 조선을 지나가야 했기에 조선을 침략했고요.
53:59
Speaker A
이것이 바로 임진외란입니다. 1592년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고 일본군은 조총을 이용한 강력한 무기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 초기에 조선군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합니다. 결국 일본군이 빠르게 복적으로 징격하면서 한양까지 함락되었죠. 하지만 조선이 그대로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여러 곳에서 조선군과 의병들이 마서
54:27
Speaker A
싸웠는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이순신입니다. 이순신은 조선 수군을 이끌고 일본군의 해상 복음로를 공격하였으며 일본군의 전쟁 수행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54:40
Speaker A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정식으로 편성된 군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조직한 군대인 의병들이 일어납니다. 대표적 인물은 곽제우인데요.이 곽제우는 경상도 지역에서 의병을 조직하여 일본군 근군과 맞서 싸웠습니다.
54:58
Speaker A
그런데 조선 말고도 명나라도 조선을 지원해 줍니다. 일본의 목적이 결국 중국이었기 때문에 명나라도 열심히 우리를 도와줘요.
55:09
Speaker A
전쟁이 한 번에 끝난 건 아닙니다. 일본과의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일본이 다시 조선을 침략하는데이를 정류재란이라 부릅니다.
55:19
Speaker A
나중엔 일본의 도요토 미디오 씨가 사망하면서 일본군이 철수하고 전쟁이 끝납니다. 외란의 결과 조선은 엄청나게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쟁 때문에 국토가 황폐해졌고요.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으며 국가의 재정도 크게 악화되었습니다.
55:39
Speaker A
그런데 일본은 다릅니다. 조선을 침략한 과정에서 조선의 기술과 문화가 일본에 전해졌고 여러 분야에서 일본의 문화 발전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55:51
Speaker A
명나라는 조선을 도아 일본과 싸우면서 국력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그틈을 타 북쪽의 여진족이 성장하였고이 여진족은 나중에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56:05
Speaker A
광해군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조선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농지를 조사하고 국가의 재정을 회복하는 등 전쟁 피해를 복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 어느 쪽 편을 들 것인가인데요.
56:23
Speaker A
광해군은 중립 외율을 실시합니다. 영나라가 강대국이긴 하지만 후금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크게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그로 돌리기에는 어려워요.
56:37
Speaker A
그리고 임진 외란으로 이미 나라가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다시 전쟁이 발생한다면 큰 문제가 됩니다.
56:45
Speaker A
하지만 이러한 광해군의 외교 정책을 반대하는 세력이 서인이었는데요.이 서인은 명나라와의 관계를 중요시 여겠습니다. 광해군의 중립 외교에 반발한 서인은 결국 인조 반정을 일으켰고 이제는 인조가 왕위에 오릅니다.
57:02
Speaker A
인조는 친명 배금 정책을 추진하게 되는데요. 명나라와 친하게 지내고 후금을 배척합니다. 근데 후금 입장에서는 조선이 자신들을 적대하니까 이제 그냥 나눌 수 없겠죠. 그래서 쳐들어옵니다. 그걸 갖다가 정묘호란이라 부릅니다. 후금은 조선을 침략하자 조선과 형제 관계를 맺는 등의 조건으로 일단 전쟁을 끝냅니다. 하지만 후금은 더욱
57:29
Speaker A
강해지고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군신 관계를 요구합니다. 조선이이를 거부하자 다시 쳐들어오게 되는데이를 병자 호란이라 부릅니다.
57:43
Speaker A
인조는 천군을 피해 나한 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버티기 힘들었고 인조는 청나라에게 항복을 합니다.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 의식을 치르게 되었고요.이를 삼전도의 군욕이라 부릅니다.
58:02
Speaker A
이제 조선은 명나라를 버리고 청나라와 군신 관계를 맺게 된 거죠. 조선은 두 번의 큰 전쟁을 겪으면서 국가의 운영 방식에도 큰 변화가 나타납니다.
58:16
Speaker A
특히 중요한 기구가 있는데 바로 비변사입니다. 원래 비변사는 외적의 침입과 같은 국가의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임시적인 회의 기구입니다.
58:28
Speaker A
그런데 외란과 호란을 겪으며 비변사의 역할이 점점 커졌고 국방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행정에 관한 중요한 문제까지 비사에서 논의하게 됩니다.
58:40
Speaker A
결국 조선 후기에는 비변사가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최고 권력 기구가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조선의 중앙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은 의정부였는데이 비변사의 힘이 강해지면서 의정부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는 거죠.
58:59
Speaker A
그래서 비변사에 참여하는 고비 관려들의 권한은 커지고 왕권은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조선 전기에는 중앙군이 5위였는데 임진 외란을 겪으면서이 군사 체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군사 조직이 5군영이고요.
59:20
Speaker A
훈련도감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금영이 있습니다. 지방군도 양반뿐만 아니라 양인과 노비 등 여러 신분을 포함하여 편성한 지방 군사 조직인 속오군이 만들어지고요.
59:36
Speaker A
이제 정치적 변화를 한번 보겠습니다. 앞에서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면서 붕당 정치가 시작되었다고 했죠. 근데 조선 후기에는 붕당 사이의 갈등이 더욱 심해집니다.
59:48
Speaker A
대표적 사건이 예송인데요.이 예송은 현종 때 발생하였습니다. 예송은 전쟁이나 용토 문제가 아니라 왕실의 장례와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가를 둘러싼 문제인데요.
60:03
Speaker A
당시에는 이러한 유교의 예법이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했습니다.이 이 문제를 두고 서인과 남인이 치열하게 논쟁을 버립니다.
60:15
Speaker A
그래서 줄여서 말하자면 예송은 유교의 예법에 대한 학문적 논쟁이자 동시에 붕당 사이의 정치적 경쟁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60:26
Speaker A
그리고 숙종대가 되면이 붕당 정치가 환국으로 변하게 되는데 환국은 정권을 잡고 있던 붕당이 갑자기 다른 붕당으로 교체되는 것을 말합니다.
60:38
Speaker A
그런데 이렇게 환국이 반복되면 안정적인 정책을 추진하기가 어렵습니다. 정권을 잡은 붕당은 상대 붕당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했고요.
60:48
Speaker A
그러다 보니까 붕당 정치가 원래 가지고 있던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상대방을 견제한다는 긍정적인 기능은 약해지고 자기 붕당만 권력을 독점하려고 하는 모습이 강해집니다.이를 이를 일당 전제화라 부르며이는 붕당 정치의 패단이라 볼 수 있습니다.
61:09
Speaker A
영조의 당평책은 특정 붕당만을 흔들지 않고 여러 붕당에서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려고 한 정책입니다. 그리고 이조 전랑의 권한을 줄여서 붕당히 인사권을 이용해 세력을 확대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였고요.
61:26
Speaker A
그리고 균력법은 조선 시대에는 군역이라는 군사 의무가 있는데이 군역을 대신해서내는 군포라는게 있습니다.이 군포는 1년에 두 필을 부담하였는데 균력법을 통해 한 필로 이제 줄였습니다.
61:43
Speaker A
그리고 영조 때는 법전도 정비하게 되는데 바로 속대전을 편찬합니다. 조선 초기에 경국 대전이 발관된 이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법과 제도가 많이 생겼을 거예요. 이러한 기존 법전을 보완한 책이 바로 속대전입니다.
62:01
Speaker A
다음은 정조입니다. 정조 역시 영조의 탕평책을 이어나가는데 여기에서 왕권도 강화해 나가는 개혁 정치도 추진합니다. 규장각은 원래 왕실 도서를 보관하고 있는 기관이었지만 정조 때에는 국가의 정책을 연구하고 개혁을 뒷받침하는 젊고 능력 있는 학자들을 연구하도록 하였습니다.
62:26
Speaker A
초개 문신자란 젊은 문신들을 뽑아서 일정 기간 교육하고 연구하게 하면서 능력 있는 관료를 육성하는 제도입니다.
62:36
Speaker A
방용령은 정조를 지키는 친의 부대이며 수원 화성은 정치적 경제적 구상이 반영된 그런 도시가 바로 화성입니다.
62:47
Speaker A
대전 동편도 역시나 법전인데요. 기존 법전을 다시 정리해서 편찬한 책이 대전 통편입니다. 그런데 정조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조선의 정치적 상황이 크게 달라집니다.
63:04
Speaker A
정조 사망 이후 특정 가문이 왕실과의 혼인 관계를 이용해서 정치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데이를 세도 정치라 부릅니다. 즉 왕실의 외척 가문이 정치 권력을 독점하는 정치 형태인데요. 대표적인 가문으로는 안동김 씨가 있습니다.이 세도 정치가 계속되면서 정치가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백성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이 삼정의
63:29
Speaker A
문란인데요. 삼정이란 전정 군정 환곡인데이 세 가지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관리들의 부정 부패와 수탈 수단으로 변질됩니다.
63:43
Speaker A
전정은 토지와 관련된 세금입니다. 그런데 관리들이 세금을 부당하게 더 걷고요. 군정은 군력과 관련된 제도인데 군력을 면제받아야 되는 사람들 뭐 할아버지나 어린아이기 심지어 죽은 사람이기까지 군포를 부과하였는데 이제 이러한 부당한 수탈이 발생하였다는 거죠.
64:05
Speaker A
환곡은 원래 봄의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갚도록 하는 제도였는데 이것 역시 관리들이 강제로 곡식을 빌려줘서 과도한 이자를 붙이는 등의 방식으로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이를 일컬어 삼정의 물란이라 부릅니다.
64:22
Speaker A
그러면 백성들은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닙니다.이 세금 부담과 관리들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농민들이 정하게 되는데 일단 처음은 홍경의 난이 있습니다.이는 이는 평안도 지역 사람들이이 지역에 대한 차별을 많이 느꼈기에 그 홍경의 나을 일으켰고요.
64:42
Speaker A
임술농빈 봉기는 진주 지역에서 발생한 농빈 봉기입니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삼정의 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 삼정 이정청을 설치하지만 큰 효과는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미 세도 정치와 지방 관리들의 부정 부패가 심각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죠.
65:06
Speaker A
흥선 대응군이 가장 먼저 해결하고 싶었던 것은 왕권을 강화하고 세도 정치의 패단을 없애고 싶어한 것입니다.
65:15
Speaker A
먼저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였고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비변사의 권한을 축소합니다.
65:26
Speaker A
그리고 왕실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 대전 회통이라는 법전을 편찬하였고요. 그리고이 흥선 대응군의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가 경복궁 중건입니다.
65:37
Speaker A
경복궁은 임진란 때 불탄 뒤 오랫동안 복구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흥선 대원구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왕실의 상징인 경북궁을 다시 건설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경북궁을 지으려면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제 돈을 마련한 방법이 원납전과 당백전인데 원납전은 원에서 납부하는 기부금이었지만 실제로는 강제로 납부해서 원망하며 납부한다는 의미에
66:06
Speaker A
원납전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당백전은 당시의 일반적인 화폐보다 100배의 갑어치를 하는 고액 화폐였습니다. 이러한 고액 화폐가 많이 발행되자 물가가 크게 오르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66:23
Speaker A
그리고 중요한 정책은 서원 철패입니다.이 서원은 유학자를 제사하고 양반들이 공부하던 사립 교육 기관인데이 양반들의 특권을 유지하는 공간으로 변질된 곳이 많았어요. 그리고 서원에는 면세와 면역의 특권이 있었기 때문에 세금을 내지 않거나 군력을 면제받았기 때문에 국가 입장에서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66:48
Speaker A
그래서 전국에 47개의 소원만 남기고 대대적으로 철패시켜 버려요. 그리고 흥선 대원구는 삼정의 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책을 실시하는데 먼저 전정을 해결하기 위해서 양전을 실시합니다.
67:04
Speaker A
실제 토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세금을 제대로 부과하려는 것입니다. 군정의 문제를 고치기 위해서는 호포제를 실시합니다. 호포재란 양반도 군포를 부담하게 하였다는 것인데요. 그리고 환국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창제를 실시합니다. 사창은 마을에서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곡식 창고인데 중앙이나 지방의 관리가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67:30
Speaker A
운영하도록 한 것입니다. 여러분 유병제 알죠? 그 동생이 병호예요. 병제 병호신. 갑자기이 말하는 이유는 서양의 침입 과정을 공부할 때 사건의 흐름을 외우기가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병제 병호신 이렇게 외워 주면 쉽죠.
67:52
Speaker A
근데 병제 병신이래 버리면 중간에 오가 빠지니까 곤란합니다. 병제 병호신 한번 보겠습니다. 병 흥선 대응군이 천주교를 탄압한 걸 병인 박해라 부르고요. 제 미국 배인 제너럴 세모노가 평양에 기어 들어와 가지고 난동을 부립니다. 그래서 그 배를 침몰시켰는데 제너럴 서모노 사건이라 부릅니다. 병 아까 천주교
68:17
Speaker A
탄압했죠. 그때 프랑스 선교사들이 있었는데 좀 많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가 쳐들어왔고이를 병인 양료라 부릅니다. 이걸 공부할 때 세트로 외울 것은 정족산성 양원수 왜 규장가 이렇게 같이 알아둡시다.
68:34
Speaker A
다음 5. 독일 사람 오페르트가 흥선 대응군의 아버지인 남현군의 묘를 독을 하려던 사건입니다. 신 제너럴 혐모노 사건 따지로 미국이 왔습니다. 신미 양료. 이렇게 두 차례의 침입을 받은 흥선 대원군은 통상수교 거부 의지를 명확히 하는 척화비를 전국에 세웁니다.
68:57
Speaker A
통상 계활론 또는 통상수교론 같은 말입니다. 박규수 오경석같이 청나라에 자주 가서 서양 문물들을 접하고이 사람들은 이제이를 조선에 소개시켜 줍니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것이 훗날 개화파라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69:18
Speaker A
메이지 유신위로 몸집을 키운 일본은 조선에게 사신을 발견합니다. 이제 황제의 나라로 모시라고요. 하지만 조선은 당연히 무시하죠.
69:29
Speaker A
그러자 자존심이 상한 일본은 조선을 무력으로 침공하자는 한국을 정복하자 즉 정한론이 등장하게 됩니다. 한편 조선에서도 이제 흥선 대응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직접 정신하게 되는데이 민비의 입낌이 세입니다.
69:47
Speaker A
그래서 다른 나라랑 한번 교류해 볼까 이런 식으로 외교 정책이 변화하게 되죠. 그리고 일본의 군함민 운여호가 우리 그 강화도 앞바다 쪽으로 와 가지고 대포를 쏩니다. 교류할래 아니면 전쟁할래?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조선도 어차피 다른 나라랑 교류할 거 차라리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이 낫지
70:07
Speaker A
않을까 싶어서 조약을 맺게 되는데요. 그 이름이 바로 강화도 조약입니다. 강화도 조약을 맺고 나서 조일수호 조교부록 조일 무역 규칙 같은 부차적인 조약들이 따라옵니다.
70:20
Speaker A
그러면 강화도 조약을 자세하게 살펴보면요. 또 다른 정식 명칭은 조일수호 조규입니다.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이자 불평등한 조약입니다. 불평등한 내용이 뭐냐면 부산, 인천, 원산 이렇게 세 개 한구를 열고요. 해안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을 인정한다 그 말입니다.
70:45
Speaker A
별개로 조선은 자주국이라고 또 얘기를 하고 있는데이 말은 일본이 이제 조선을 본격적으로 침략할테니까 그전에 이제 순대고 [목을 가다듬음] 있던 정하는 조선에 간섭하지 마라. 그런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71:01
Speaker A
조선이 일본과 강화도학을 맺자 전통적으로 조선과 친했던 청나라가 긴장을 하게 되는데요.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조선에게 미국과의 수교를 추천합니다.
71:15
Speaker A
조선 책량이 책 중요한데요.이 책이 유포되면서 조선에서도 이제 미국과 교류해 볼까 이런 분위기가 형성이 됩니다.
71:26
Speaker A
그리고 나서 이제 미국과 조미수호 통상 조약을 맺고요.이 조약도 역시나 불평등한 조약입니다. 내용을 보면 영사 재판권 인정 그리고 최애국 대우가 있네요.
71:39
Speaker A
아까 일본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었다면이 미국과의 조약은 서양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입니다. 영사 재판권 인정 뭐 최애국 대우 중요하죠.
71:53
Speaker A
이렇게 미국과 조약을 맺고 나서 영국, 독일, 프랑스 같은 여러 서양의 국가들과 조약을 맺습니다. 이제 조선은 서양 중심의 국제 질서에 편입되었고이는 훗날 조선의 이권들이 많이 빼앗기게 되는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72:14
Speaker A
두 번째 개화 정책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한구를 열었으니까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근대적으로 발전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겠죠.
72:25
Speaker A
그래서 일본에는 수신사, 청에는 영선사, 미국은 보빙사 라임이 딱딱 들어맞죠. 요런 식으로 이제이 사람들을 파견했고요.
72:35
Speaker A
그리고이를 토대로 해서 개화 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인 통리 기모 아문을 설치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등장할 이모군란의 핵심 개념인 신식 군대인 별기군을 새롭게 만들게 되고요.
72:50
Speaker A
군사 제도도 5군영 다섯 개의 부대에서 2형 두 개의 부대로 축소합니다. 그럼 그 당시에 군인들이 일자리를 많이 잃었겠다 그죠?
73:02
Speaker A
다음 위정 착사 운동은 위한다. 지킨다. 정 바른 것이란 성리학입니다. 척 배척한다. 사악한 것을 여기서 말하는 사악한 것이란 서양 문물들이에요.
73:17
Speaker A
서양 문물들입니다.이 위정 착사 운동을 공부할 때는 시대별로 끊어서 공부하면 좋아요. 1860년대에는 이항로, 기정진 이런 양반들이 통상 수교를 거부했습니다.
73:31
Speaker A
흥선 대응군의 주장과 똑같아요. 척화 주전 서양 오랑캐들과의 평화를 배척하고 싸우자. 이제 그 말입니다. 1870년도에는 최익현 이분이 외양 일체론을 주장하게 되었는데요.
73:48
Speaker A
왜 일본이나 양 서양 애들이나 똑같아. 그러니까 일본이랑 그 조약을 맺어서 안 된다. 그 당시에 강화도 조약을 맺을까 말까 고민하던 시기였는데이 최익현은 일본도 서양과 똑같기 때문에 전마들과 교류하지 말자라고 주장했습니다.
74:07
Speaker A
1880년대에는 이만손이란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영남 지역에 수많은 사람들이 왕에게 상소문을 올리는데요. 영남 만인소라 불립니다.이 이 당시에는 또 조선 청약이 유포되었다 보니까 이제 개향은 이미 했어요. 하지만 이제 개화 세양 사람들처럼 되지 말자. 그런 이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74:31
Speaker A
그리고 189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일본이 우리를 심략하고 있는데요.이 일본에 항쟁하는 항일 의병 운동이 전개됩니다. 신식 군대인 별기군에 비해서 구식군이들은 차별을 많이 받습니다.
74:48
Speaker A
월급을 1년 넘게 못 받았죠. 그러다가 13개월 만에 쌀을 받았는데 절반이 모래라니 굉장히 화가 납니다.
74:56
Speaker A
뭐 그 이후 과정들은 수업 때 너무 임팩트 있게 얘기해 버려 가지고 생략하고요. 아무튼 구식 군인들은 인근에 있던 하측민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걸 이모군란이라 부릅니다.
75:09
Speaker A
반란의 규모가 커지자 민은 즉시 도망을 쳤고 흥선 대응군이 다시 집권하게 됩니다. 홍상수교 거부의 아이콘 답게 기존에 했던 개화 정책 모조리 초기화시켜 버립니다.
75:23
Speaker A
한편 도망쳤던 민비는 청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청의 군대가 이모군란을 진압합니다. 청은 흥선 대응군을 납치하고 조청상민 수육 무역 장정을 체결합니다.
75:36
Speaker A
청나라가 본격적으로 조선 경제에 침투하겠다는 거죠. 그리고 마은산과 멜렌을 고문으로 파견하여 내전과 외교에도 간섭을 합니다.
75:47
Speaker A
아까 그 이모군란 때 90 군인들이 일본인도 죽이고 일본 공사관도 불을 질렀거든요. 그 왜 그러냐면 일본이 우리의 쌀을 많이 유출해 가고 별기군을 훈련시킨 교관이 일본이다 보니까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
76:04
Speaker A
아무튼 1월 9실로 일본과도 재물포 조약을 맺게 되는데 이제 배상금을 지불합니다. 갑신 정변은 한 페이지만으로 끝내 버리겠습니다. 앞에서 통상수교론 하면서 계화파 나왔었죠.이 계화파가 온건 계화파 급친 계화파로 나닙니다. 온건은 천천히 급지는 빨리빨리.
76:30
Speaker A
온건 계화에는 김윤식, 김홍집이 있고요.이 사람들은 청나라와 친합니다. 그래서 청나라의 양무 운동을 벤치마킹에서 따라하려고 해요.
76:40
Speaker A
양무 운동의 중체 서용 비슷하게 동도석기론 동양의 제도를 근본으로 하고 서양의 기술을 쓰자 뭐 이런 식으로 주장합니다.
76:50
Speaker A
급진 괴파는 청나라와 관계를 끝내고 일본이랑 가까이 지내려 하는데 메이지 유신을 본받고자 합니다. 대화 정책을 추진하려다 보니까 돈이 모자합니다. 그래서 급진 개파 김옥규는 내가 일본 가서 돈 빌려올게 하고 큰 소리 쳤는데 막상 가니까 일본이 돈을 안 빌려 줘요. 그래서
77:10
Speaker A
급진 계화가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청나라가 프랑스와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조선에 주둔시켰던 군대가 일부 철소하게 되는데요. 마침 일본도 급진 계한 너그가 정면 일으켜 주면 군대 보내줄게. 이렇게 꼬입니다.
77:30
Speaker A
마침 우체국 계국 축하 공연이 있었고이를 틈타 급진 계압하는 정면을 일으키는데 이걸 갑신 정면이라 부릅니다.
77:39
Speaker A
청나라를 모시는 사대 관계를 없애자 능력 위주의 사회와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 토지와 관련된 세금을 개혁하자.
77:49
Speaker A
나라의 돈을 한 군데에서 모으고 쓰자 하며 이렇게 야무실게 개혁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군대를 보내지 않았고 나중에 돌아온 청나라의 군대에 의해서 3일 만에 갑신 정변은 진압당합니다.
78:05
Speaker A
그 이후에 일본과 한성 조약을 맺으면서 배상금을 지불하는데요. 갑자기 일본한테 왜 돈을 주냐 궁금하죠. 조선 정부는 나중에 일본에게 항의합니다. 너들이 괜히 급진 계 애들한테 헛바람 넣어 가지고 갑신 장면이 발생한 거 아니냐. 그 따지니까 도리어 일본은 성을 내요.
78:25
Speaker A
야, 갑신 정면 때 진압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피해를 받잖아. 돈 내놔. 이렇게 요구합니다. 그럼 완전 날강도죠.
78:33
Speaker A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더 큰 무력 충돌를 피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성 조약을 맺게 됩니다.
78:41
Speaker A
다음 텐진 조약은 천과 일본이 서로 맺은 조약인데 조선에서 양쪽 군대가 철수하고 조선의 군대를 보낼 때에는 미리 상대국에 알리자 이런 내용입니다. 그 남의 땅에서 지금 두 나라가 참 희한하죠.
78:57
Speaker A
갑신 정경관은 별개로 검은 사건이 있는데요. 러시아의 남쪽 진출을 막는다는 구실로 영국이 여수 옆에 있는 검은라는 선을 불법 점령합니다.
79:08
Speaker A
뭐 나중에 청나라가 중제해서 영국군은 철수예요. 이렇게 여러 나라들이 조선에 껄떡거리니까 차라리 조선을 중립적인 국가로 만들자 하는 주장도 있 있습니다. 독일 외교관 부들러가 있는데요. 정말 성격이 부드럽고 좋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6일존이라 사람도 있습니다.네 번째 동학 농민 운동입니다. 동학이 확산된 계기는 당시 세금의 부담과
79:36
Speaker A
관리들의 수탈로 농민들의 불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경주 몰락 양반 출신이었던 최재우는 동학을 장시하는데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을 내세옵니다.
79:49
Speaker A
2대 교주 최시형은 마을 단위로 접을 조직하여 종교를 전파하는 포접제를 만들었고 교조 신원 운동을 전개합니다.
79:59
Speaker A
교조는 종교의 조상이니까 최제를 말하는 거고 최재우는 농민들을 꼬셔서 사회를 어지럽게 하였다는 제목으로 처형당했었는데 그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것이 신원입니다.
80:12
Speaker A
그 후 전라도 고부의 군수 조병갑이 백성들 관리는 안 하고 부정부패를 많이 저지릅니다.이 보라는 것은 물을 저장하는 시설인데 만석보를 백성들에게 강제로 만들라 하더니 만들고 나서는 물을 쓴만큼 세금도 내라 합니다.
80:30
Speaker A
분노한 농민들은 전봉준을 필도로 고부 관화를 습격합니다.이를 고부농민 봉기라 부릅니다. 그러자 정부는 안핵 이용태를 파견하여 사태 수습을 시도하고 농민군은 정부를 믿고 해산합니다. 그런데 해산하자 이용태는 본기에 참여한 농민군을 처벌하니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농민군들은 다시 들고 일어나는데요. 제1차 본기라 부릅니다.
80:58
Speaker A
전봉준과 소화중 농민군을 조직하여 고부 지역을 점령하고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케 한다는 보국 안민 폭정을 없애고 백성을 구한다는 제폭 구민의 구호를 외칩니다.
81:12
Speaker A
농민군은 황토연과 황용성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전주성까지 점령해 버립니다. 논란 정부는 동학 농민군을 진압하고자 청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아까 기억나죠? 텐진 조약. 청의 군대가 들어오니까 일본도 그걸 알게 되고 일본 군대도 들어옵니다. 그러자 농민군은 천과 일본의 개입을 막기 위해 정부에게 우리 재산할 테니 폐정
81:42
Speaker A
개혁안을 실시할 수 있도록 인정해 줘라고 말합니다. 정부는 오케이하죠. 그래서 전주 화약을 맺고 농민군은 해산하고 전라도 각 마을에 자치 기구인 집강수를 설치하여 폐정 개혁을 실시하는데요. 그 내용은 탐관리를 처벌하고 뭐 세금내는 걸 계약하자 이런 등의 내용들이 있습니다.
82:05
Speaker A
정부도 교정청을 설치해 가지고 자주적 개혁을 추진하면서 청과 일본에게 이제 우리 진압됐으니까 너희 군대 좀 철수해 줘. 요청을 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군대 철수 요구를 거부하고 무단으로 경북공을 점령합니다.
82:21
Speaker A
그리고는 청을 공격하게 되고 청일 전쟁이 발생하는데 일본이 이겨버립니다. 힘을 앞세운 일본은 정부와 연합하여 농민군을 진압할 준비를 마칩니다.
82:34
Speaker A
농민군도 일본이 들어와서 설치되니까 반 침략을 주장하며 봉기합니다. 제2차 봉기죠. 하지만 공주 우금지 전투에서 농민군은 크게 패배하고 농민기는 진압되며 동학 농민 운동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82:50
Speaker A
동학 농민 운동은 신분 질서를 개혁하려는 주장을 봤을 때에 반본건 운동임을 알 수 있고요.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자는 반침략 운동입니다.
83:01
Speaker A
폐정 개혁 안에 일부는 가보 개혁에 반영되었으며 농민군의 남은 세력은 항일 의병으로도 개승되었기에 역사적 의가 있습니다.
83:15
Speaker A
마지막 갑역입니다. 갑보 개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요. 제1차 개혁은 기몽집을 필두로 한 내각 정치이며 군국 기무처라는 기구를 설치하여 개혁을 실시합니다.
83:28
Speaker A
중국 연호 대신 계국 기연 즉 독자적인 연호를 쓰기 시작하는데요. 그리고 국내부를 설치하여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를 분리하였습니다.
83:39
Speaker A
지금이랑 비유하면 국내부는 대통령 비서실인데 대통령 비서실에서 국정 사무 즉 나라의 중대한 사안들을 결정하지 않죠. 대통령을 보필하는 거니까 왕실 사무라 볼 수 있겠습니다.
83:53
Speaker A
그리고 탁지암을 설치하여 재정 일어나 돈 쓰고 모으는 거를 하나로 통일하자. 은위 화폐 제도 돈의 가시 기준을 은으로 정해서 은을 돈처럼 쓴다 이겁니다.
84:06
Speaker A
다음 조세 금나파.은 나왔다 금 나왔다. 헷갈리죠. 근데이 조세 금나파는 금을내는게 아니라 세금을 물건이 아닌 돈으로 내자. 이건데 그 당시 돈은 은이었으니까 결국 은을내는 거네요.
84:20
Speaker A
신분제와 과거제를 폐지하고 나쁜 전통이었던 조혼, 고문, 연자재를 폐지합니다. 제 1차 개혁은 청일 전쟁 중에 추진되었기에 다른 나라의 간섭 없이 비교적 자주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84:36
Speaker A
제2차 개혁은 청일 연정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의 간섭이 심해지면서 시작됩니다. 김홍집에서 박영을 더한 연립 내각 정치였으며 홍범 14조를 반포합니다.
84:50
Speaker A
여기에는 의정부를 내각이라 이름을 바꾸고 전국 8도를 23부로 개편 재판소를 설치하여 사법권을 독립시켰으며 근대적 교육 제도라 할 수 있는 교육 입국 조서를 발표하였고 자주 독립도 선포하였습니다.
85:09
Speaker A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완전히 조선을 장악하려 하자 러시아가 등장해서 일본을 견제하게 되고이를 위해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립니다.
85:20
Speaker A
세계의 나라가 간섭에 따해서 간섭이라 불리며 조선에서 정권을지고 있던 민비도 이제 일본 말고 러시아로 갈아타려고 합니다. 그러자 일본은 민비를 살해하게 되는데이를 을미 사변이라 부릅니다.
85:36
Speaker A
그리고 제3차 개혁이 시작되는데 또 다른 이름은 을미 개혁입니다. 완전 친일 냉각이 만들어지고요. 머리를 짧게 자르는 단발형 천년도라는 전염병을 예방하는 주사인 종두법 음력이 아니라 양력을 쓰는 태양력 사용 우편 제도를 정비하여 통신 기반을 근대화하였으며 소학교를 설치해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려 했습니다. 이거 쉽게
86:02
Speaker A
외우려면 앞글자만 따서 단종 태우소라고 외우세요. 왕과 사는 남자 다들 알죠? 단종이 청령포에서 나고 싶어서 배를 타려고 하자 어몽도가 외칩니다. 단종 태우소.
86:21
Speaker A
어쨌든 나라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민비가 살해당했다는 사실과 우리의 성리학적 질서의 위배되는 머리카락을 자르라는 단발령은 조선 사람들에게 큰 분노를 일으킵니다.
86:33
Speaker A
당시의 의병을 을미 의병이라 부르면 부르고요. 부인이 일본으로부터 살해 당하자 다음은 내 차례인가? 이 무서웠던 고정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하는데이를 악관 파천이라 부릅니다.
86:48
Speaker A
참고로 러시아 공사관은 서울 안에 있습니다. 한 나라의 임금이 나라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다른 나라의 관리 구역에 들어갔다는 사실은이 외국 세력들이 이제 더욱 우리를 만만하게 보게 됩니다.
87:02
Speaker A
이렇게 갑보 개혁 내용들을 정리해 봤고 그 역사적 의는 갑신 정면의 개혁과 동학 농민 운동의 요구를 반영한 근대적 개혁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배층 유주였고 일본의 강압으로 인해 많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으며 군사 제도 개혁이 없었기에 국방력 강화회 소홀했다는 한계점이 있습니다.
87:27
Speaker A
어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여러분들 공부하느라 수고 많았고요. 뭐 실제로는 내가 더 수고 많이 했지만 아무튼 영상을 좀 돌려보면서 이번 한국사 시험 좋은 점수 얻기를 갑니다.
Topics:한국사고대국가삼국시대통일신라고려조선근대사수능한국사역사강의임현우TV

Get More with the SozAI App

Transcribe recordings, audio files, and YouTube videos — with AI summaries and speaker detection. 30 minutes free.

Or transcribe another YouTube video he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