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의 질문에 기독교 신앙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답하며 신앙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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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Takeaways
- 죄의 용서는 가능하지만 죄의 결과는 반드시 따른다.
- 삼위일체 교리는 논리적 모순처럼 보이나 신비로 받아들여진다.
- 믿음의 핵심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며, 이는 삶의 변화와 실천으로 이어진다.
- 신앙은 개인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 강인함과 회복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
-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예수와 구약 예언의 연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What the video covers
- 흉악한 죄인도 회개와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죄의 결과와 대가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성경적 사례를 설명한다.
-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기 위한 비유와 논리적 모순에 대한 신비를 소개한다.
-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배경과 구약과 신약의 연결고리를 통해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설명한다.
- 믿음의 본질은 단순한 신의 존재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임을 강조한다.
- 신앙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신앙을 통한 내적 강인함과 성장 가능성을 논의한다.
- 니체의 철학과 기독교 도덕의 관계를 비교하며 신앙과 주체성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 종교가 때로는 인간에게 필요한 ‘모르핀’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 예수님의 행적과 사회적 배경을 통해 그의 가르침과 영향력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 무신론자의 의문과 기독교인의 신앙 고백 사이의 대화를 통해 신앙의 깊이를 탐구한다.
- 신앙과 도덕,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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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aker A
진심을 담아서 존경합니다.
Speaker B
아, 아, 아.
Speaker A
제가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모르겠는데
Speaker B
아 예.
Speaker A
편집하셔도 되는데
Speaker B
아 예.
Speaker A
흉악한 살인범이 있어요.
Speaker B
아 예.
Speaker A
가서 회개하잖아요.
Speaker B
예.
Speaker A
그러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받았다고 하느님이 있잖아요.
Speaker A
예수님은 하느님 아들이라고 하잖아요.
Speaker A
누구를 믿는 거예요?
Speaker A
나 자신을 약하게 만드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거든요.
Speaker A
나를 내가 나 스스로 오롯이 마주 봐야 저는 좋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왜 그것을 신 앞에 가서 해야 되는지에 대한
Speaker A
의문이 생기거든요.
Speaker A
그럼 제가 궁금한 게 굉장히 많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Speaker A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쓰이는 소재로 흉악한 살인범이 있어요.
Speaker B
아, 좋아요. 좋아요. 예.
Speaker A
근데 가서 회개하잖아요.
Speaker B
예.
Speaker A
그러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받았다고 많이 본인들은 얘기를 하는데
Speaker A
실제 사회에서 저지른 죄가 없어지냐? 그건 아니잖아요.
Speaker B
정확합니다.
Speaker B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성경에 보면 다윗이라는 왕이 있거든요.
Speaker A
네.
Speaker B
이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표현이 쓰이는데 그러니까 성경에 전무후무한 인간이에요. 하나님이 진짜 좋아했던 하는 짓거리마다 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인간인데
Speaker B
이 인간이 어떤 짓을 저지르냐면 그 자신의 부하가 '우리야'라는 사람이 있어요.
Speaker A
네.
Speaker B
오른팔 같은 아주 충직한 부하인데 정말 괜찮은 부하예요.
Speaker B
근데 이 사람이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 그 아내가 '밧세바'라는 아내인데
Speaker B
딱 봤는데 너무 마음에 드는 거예요.
Speaker B
데려와서 이제 바람을 핀 거죠.
Speaker B
근데 아뿔싸 임신을 했어요.
Speaker B
큰일 난 거예요.
Speaker B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우리야, 너 전쟁하지 말고 들어와. 야, 너 아내가 있는데 내버려 두면 되냐?
Speaker B
같이 행복한 밤을 보내.'
Speaker B
근데 충직한 부하예요.
Speaker B
'왕이시여 내 병사들이 전쟁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Speaker B
나는 이 병사들과 함께 자겠습니다.'
Speaker B
그러고 안 들어간 거예요.
Speaker B
숨길 수가 없어요 이제.
Speaker B
어떻게 해요?
Speaker B
죽여야죠.
Speaker B
자기의 충직한 그 부하 시켜 가지고 지휘관 같은 애 시켜 가지고
Speaker B
'우리야를 전선의 맨 앞으로 보내라.' 죽인 거예요.
Speaker B
하나님이 이걸 알고 선지자를 보내요.
Speaker B
'나단'이라는.
Speaker B
그래서 선지자가 막 이런 얘기를 해요.
Speaker B
왕이시여 이렇게 양들이 많은데 어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양 하나까지 뺏어 가지고 그걸 잡아먹었다.
Speaker B
어떻게 해야 되냐?
Speaker B
화가 나가지고 '죽여버려야지' 막 이랬는데
Speaker B
'그게 너다!'
Speaker B
막 이래가지고 다윗이 충격받아서 회개합니다.
Speaker B
하나님이 용서하세요.
Speaker B
어, 그럼 끝났나요?
Speaker B
아니요.
Speaker B
그 아이는 유산하고
Speaker B
그 다음부터 다윗의 집에 '칼이 돈다'고 표현하는데 어떻게 되냐면은 다윗의 첫째 아들인가? 숫자는 기억이 안 나요.
Speaker B
첫째 아들(암논)이 딸 하나(다말)를 강간하는데 배다른 형제들이거든요. 이 딸의 오빠(압살롬)가 이제 첫째(암논)를 죽여버리고
Speaker B
막 나중에 얘(압살롬)가 아빠의 자리를 찬탈해 가지고 아빠의 후궁들을 백주대낮에 강제로 이제 성적인 어떤 착취를 하는
Speaker B
그런 일이 벌어지는 처참한 일이죠.
Speaker B
봐봐요 용서를 받았어요.
Speaker A
하느님한테.
Speaker B
용서를 했어요. 그리고 애가 죽고
Speaker B
자식이 죽고 강간당해서 폐인이 되고 애 하나는 반역자가 돼서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고
Speaker B
아주 그냥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거예요.
Speaker B
용서는 받았어요.
Speaker B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어요?
Speaker A
조금은 알겠지만 우리나라 유교사상으로 보면
Speaker A
내가 지은 업보 혹은 카르마 때문에 대대손손 그걸 당하는 거잖아요.
Speaker A
되돌려 받는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제가 들었을 때는.
Speaker B
그것도 아예 불가능하진 않긴 한데 이게 어려운 게 뭐냐면 연좌제가 사라져도 부모가 죄를 지으면
Speaker B
아니면 부모가 뭔가 잘하면 대가를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긴 해요.
Speaker B
왜냐하면 인간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기 때문에.
Speaker B
근데 성경이 약속하는 건 뭐냐면
Speaker B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Speaker B
이게 에스겔서인가 그 내용인데 뭐냐면 아빠가 죄를 지었다고 아들이 그 대가를 직접 지지 않는다.
Speaker B
간접적으로는 질 수밖에 없죠.
Speaker B
아빠의 사업이 망하면은 자식이 잘못 안 했어도.
Speaker B
예. 근데 어쨌든 그런 어떤 것들을 하나님께서 저희가 믿기로는 막을 수도 있죠.
Speaker B
도와줄 수도 있고.
Speaker B
근데 내버려 두신 거예요.
Speaker B
알아서 해봐라.
Speaker B
더 이상 그런 것들 내가 지켜주지 않겠다.
Speaker B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마태복음 7장에서 뭐라 얘기하냐면은 그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Speaker B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라.
Speaker B
마지막 때에 왕이 오셔서 봤는데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렇게 얘기해요.
Speaker B
그러니까 어떤 죄든 용서받을 수 있는 건 논리적으로 사실이에요.
Speaker B
근데 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고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자기 혼자 '난 용서받았어' 하는 인간?
Speaker B
마지막 때 주님 앞에 서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Speaker B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Speaker B
가 당연히 되겠죠.
Speaker A
그러겠죠?
Speaker B
아 당연해요 이건.
Speaker B
당연해요.
Speaker A
알겠습니다.
Speaker A
설명해 주실 때 예수님을 서사의 주인공으로 해서 이런 히스토리를 믿는 종교로 제가 이해를 했는데
Speaker B
맞아요 맞아요.
Speaker A
하느님이 있잖아요.
Speaker B
삼위일체라고 부르는 교리죠.
Speaker A
예수님은 하느님 아들이라고 하잖아요.
Speaker A
누구를 믿는 거예요?
Speaker A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랑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거랑 같은 건가요 내용이?
Speaker B
이게 구약이랑 신약이라는 게 있는데 구약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만 있고
Speaker B
신약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와요.
Speaker B
그래서 유대교인들은 하나님만 믿고 이슬람도 하나님만 믿어요.
Speaker B
기독교만 예수를 믿는 거예요 신으로.
Speaker A
아 기독교만?
Speaker B
네.
Speaker A
아.
Speaker B
근데 기독교인들의 고백은 뭐냐면 하나님이 어떤 메시아를 보낸 구원자를 보낸다고 약속을 했어요.
Speaker B
근데 그 예언을 몇백 년을 기다렸는데 안 왔어요.
Speaker B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너무 힘들었는데
Speaker B
'어 뭐야?
Speaker B
'이 인간 특별한데?
Speaker B
'어 이거 메시아 아니야?'
Speaker B
'약속된 메시아인가 봐.
Speaker B
'어 살았다.
Speaker B
'이제 독립을 시킬 거야' 했는데
Speaker B
십자가에 달려 죽었어요.
Speaker B
그러니까 망한 거죠.
Speaker B
망한 기대인데 그 사람들이 고백하기로는 그 예수가 죽었다가 부활했다.
Speaker B
내가 그걸 봤다.
Speaker B
그런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 수백 명이 나타난 거예요.
Speaker B
그래서 그들이 모여서 정리를 한 거죠.
Speaker B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40일 뒤에 승천하셨는데 모여 가지고 그 예수는 누구였을까?
Speaker B
근데 이 사람들이 얘기를 정리하다 보니까 신기한 게 뭐냐면 '이상하다?
Speaker B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예언들이 구약에 있거든요.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실 거다.
Speaker B
이런 이런 일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거다.' 근데 그게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Speaker B
맞아 들어간다고 이 사람들이 확인을 한 거예요.
Speaker B
그래서 '어? 이상하다?
Speaker B
'예수님 이거 우리가 특별한 선지자라고 생각했는데 메시아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Speaker B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Speaker B
다시 예언들을 보니까 '아 뭐야? 근데 보니까 구약에 보니까 이 하나님이
Speaker B
자신의 아들을 보낸다는 그런 내용들이 있는 거예요.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아들에게
Speaker B
모든 권력이 이양될 것이란 약속이 다니엘서 7:14 같은 데 보면 있어요.
Speaker B
'아 그게 예수구나.'
Speaker B
라고 얘기를 한 거예요.
Speaker B
근데 문제가 있어요.
Speaker B
뭐냐면 유대인들은 절대
Speaker B
여러 명의 신을 인정하지 않아요.
Speaker A
유일신.
Speaker B
유일신이거든요.
Speaker B
신은 하나밖에 없어요.
Speaker B
문제가 생긴 거예요.
Speaker B
'이상하다.
Speaker B
'한 분인데 둘이고
Speaker B
둘인데 하나네?'
Speaker B
나중에 성령까지 들어가면 '한 분인데 셋이고
Speaker B
셋인데 하나네?
Speaker B
'이거 어떻게 해결하지?'
Speaker B
거기에서 판단을 멈춘 거예요.
Speaker B
'한 분이다.
Speaker B
근데 따로따로 할.
Speaker B
'세 분이다.
Speaker B
'그러면 삼신인가?'
Speaker B
'한 분이다.
Speaker B
'뭐야 이거 논리적 모순이잖아?'
Speaker B
정답입니다.
Speaker B
논리적으로는 모순이고 신비라고 저희가 고백을 해요.
Speaker B
그러면 그나마 그래도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비유를 들 텐데
Speaker B
이거는 정답은 아니고 조금 이해를 돕기 위한
Speaker B
좀 쉬운 거예요.
Speaker B
왜냐하면 모순이면 틀린 거잖아라고 결론을 내리는 게 맞잖아요.
Speaker B
근데
Speaker B
예를 들어서 저희가 살아가는 세계는 4차원 세계잖아요.
Speaker B
그렇죠?
Speaker B
근데 차원이 높아지면 다른 그런 개념이 생긴단 말이에요.
Speaker B
예를 들어서 여기는 2차원 평면이잖아요.
Speaker B
그렇죠?
Speaker B
손가락을 이렇게 대봐요.
Speaker B
그럼 2차원 평면에서는 원이 몇 개일까요?
Speaker A
하나죠.
Speaker B
세 개의 원이 나오는 거죠.
Speaker A
아.
Speaker B
근데 우리가 사는 차원에서 보면 이거는 몇 개예요?
Speaker A
원이에요?
Speaker B
이 이 존재.
Speaker B
이 존재는 하나의 존재거든요.
Speaker A
네.
Speaker B
근데 평면에서는 세 개처럼 보이는 거죠.
Speaker A
네.
Speaker B
그러니까 이거는 정확한 설명은 아니고 저희 비유인데 그렇게 우리가 지금 인간의 차원에서는
Speaker B
하나님이 세 분이며 한 분이라는 게 이해가 안 가겠지만 더 높은 차원에서 보았을 때는 그것이
Speaker B
논리적 모순이 없을 것이다라고 저는 기대를 하는 거죠.
Speaker B
물론 모순이라고 비판하면 맞는 말입니다.
Speaker A
아.
Speaker A
아니 저한테는 개념적으로는 굉장히 많이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Speaker A
어떤 하느님 신이라는 존재에서 기독교가 무엇을 믿고 있고
Speaker A
어떠한 영웅서사로 이야기가 쓰여져 있고 어떠한 가치관을
Speaker A
기반으로 이렇게 발전했는지 저는 아예 그런 개념이 없었고 잘 몰랐거든요.
Speaker A
그래서 오늘 말씀이 굉장히 저한테는 많은 어떤 설명과 위로가 되는데
Speaker A
그럼 믿는다는 행위가 있잖아요. 무언가 신앙을 믿는 마음.
Speaker A
신앙심이라고 하잖아요.
Speaker A
그런 거는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 어떻게 설명하시는지는 궁금하거든요.
Speaker B
이거는 설명을 많이 하지만 제가 되게 좋아하는
Speaker B
존경하는 차성진이라고 하는 목사님이 또 꽤 유명한 분이 계신데
Speaker B
그분이 이렇게 정리를 해요.
Speaker B
믿는다면 어떤 사람은 신의 존재를 믿는다.
Speaker B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봉사를 열심히 한다.
Speaker B
어떤 사람은 종교적인 특별한 체험을 한다.
Speaker B
어떤 사람은 믿는 대로 실천을 잘한다.
Speaker B
여러 가지가 있거든요.
Speaker B
근데 그 모든 것들도 믿음 안에 있겠지만
Speaker B
가장 핵심은 뭐냐면 그게 전체는 아니거든요.
Speaker B
그러니까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진짜 성경이 추구하는 기독교인이 되냐?
Speaker B
그건 아니에요.
Speaker B
교회에서 봉사활동 열심히 하는데 사회에서 막 정말 나쁘게 살아요.
Speaker B
그러면은 그거는 좀 아니잖아요.
Speaker B
그죠?
Speaker B
아니면 혼자서 어떤 특별한 신앙 체험 막 하고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그러는데
Speaker B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지 않아요.
Speaker B
그럼 그것도 아니잖아요.
Speaker B
어떤 사람은 되게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는데 신의 존재는 안 믿어요.
Speaker B
그것도 믿음이 아니잖아요.
Speaker B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총합했을 때 가장 본질이 뭐냐 하면은 신뢰한다고 얘기를 해요.
Speaker A
신뢰.
Speaker B
신뢰.
Speaker B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존재를 믿고
Speaker B
신뢰하기 때문에 그분의 약속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기도 하고
Speaker B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에 종교적인 체험을 하기도 하고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에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Speaker B
어떤 선행을 한다거나 이런 것들을 하는 거죠.
Speaker B
그래서 그 근간에는 가장 본질적인 공통의 요소는 신뢰이다.
Speaker B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Speaker A
이게 전혀 다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그 신뢰라는 것을 저 같은 비종교인이 못 갖는 이유가 굉장히 많을 건데
Speaker A
저 같은 경우에는 무언가를 믿기 시작하잖아요.
Speaker A
아까 앞서서 설명해 주셨듯이
Speaker A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잖아요.
Speaker A
사람은.
Speaker A
그러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건 나인데 내가 무언가에 대해서
Speaker A
보이지 않는 초월의 무언가를 느끼고 믿는다고 해서 이 내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라는 거죠.
Speaker A
근데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Speaker A
이 달라지지 않는 것을 탓하는 게 아니라 결국은 삶이라는 건 내가 나가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되는데
Speaker A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발전을 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Speaker A
그러면 발전이라는 건 무언가 당연히 함께 모여 사는 사회니까 문제가 있을 수 있죠.
Speaker A
트러블이 생길 수 있고 그거를 내가 직접 맞닥뜨리고 겪고
Speaker A
너와 나라는 존재가 서로 하모니를 냈다가 불협화음도 냈다가 이 안에서 대화를 통해서
Speaker A
내가 인지하고 나와 다른 너는 어떠한지 또 인지하고
Speaker A
이렇게 내가 발전해 가야 나 스스로가 잘 살았다고 생각이 되는 것 같은데
Speaker A
신을 믿는다는 건 무언가 기대는 것 같은 거죠.
Speaker A
내가 느껴서 이 사람이 이렇다라는 걸 내가 느껴서 바뀌는 게 아니라
Speaker A
어 저 신이 내가 믿고 있는 신앙심 교리가 이럴 때는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
Speaker A
이럴 때는 이런 게 좀 더 올바른 삶이라고 했는데 라고 생각하고 내가 움직이는 건
Speaker A
조금 떨어져서 거시적으로 봤을 때 나 자신을 약하게 만드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거든요.
Speaker B
저는 그거 적절한 의문이라고 생각하고
Speaker B
그게 니체가 얘기했던 의문이잖아요.
Speaker A
그런가요?
Speaker B
그죠?
Speaker A
네.
Speaker B
왜냐하면 기독교의 도덕은 노예의 도덕이라서 사람들을 나약하게 만든다는 식으로 비판을 했어요.
Speaker B
어.
Speaker B
근데 저는 그게 기독교에 대한 좋은 경고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Speaker B
왜냐하면 실제 어떤 기독교인들은
Speaker B
삶이 나약해집니다.
Speaker A
실제로.
Speaker B
지나치게 종교 중독에 빠져 가지고 내가 주체적으로 책임지고 선택을 해야 될 때
Speaker B
무책임하게 뭔가 현실을 외면하기도 해요.
Speaker B
저는 그거는 좋지 않다고 생각을 하는데
Speaker B
근데 저는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이거든요.
Speaker B
제 꿈은 목사왕입니다.
Speaker A
네.
Speaker B
저는 니체가 되게 멋있다고 생각해요.
Speaker B
니체가 하는 게 뭐냐면 결국에는 이 세상에 도덕이라는 것은 취향에 불과하고
Speaker B
도덕이 취향에 불과하다면 사실은 어떤 초월적인 가치나 이런 것들이 모두 해체되는 거거든요.
Speaker B
그래서 별명이 망치를 든 철학자죠.
Speaker B
그런데 그런 허무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영원회기라고 하거든요.
Speaker B
내가 이 인생을 무한히 영원히 똑같이 반복한다 할지라도
Speaker B
단 하나도 바꾸지 못하고.
Speaker B
그래도 나는 이 삶을 긍정하겠다.
Speaker B
어우 얼마나 멋있어요.
Speaker B
근데 제 질문은 그거예요.
Speaker B
멋있는데 너 그거 어떻게 이룰 수 있는데?
Speaker B
라는 게 저의 질문이에요.
Speaker B
전 니체가 되게 멋있다고 생각하지만 니체는 말년에 정신병원에서 죽었거든요.
Speaker A
네.
Speaker B
그걸 비하하고 싶진 않아요.
Speaker B
근데 마찬가지로 내가 나의 주체를 가지고 이 인생을 강하게 부딪히면서 세상과 부딪히면서
Speaker B
강해지며 살아가는 건 멋있죠. 영웅서사죠.
Speaker B
근데 그게 사실은 연약한 인간에게 쉬운 일인가?
Speaker B
저는 어렵다고 봐요.
Speaker A
맞습니다.
Speaker A
예.
Speaker B
근데 그게 어려울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삶에 좋은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Speaker B
내가 이 손을 놓을 것 같은 절망 속에서도 버텨보자.
Speaker B
하나님이 나에게 최고의 뭔가를 주실 거다.
Speaker B
그걸 믿고
Speaker B
5년, 10년을 견뎌요.
Speaker B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났을 때 여러 가지 상황들이 좋아지고 내가 회복이 되어서 다시 달려나갈 수 있다면
Speaker B
그건 그 사람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거거든요.
Speaker A
네.
Speaker B
저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얘기가 아예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Speaker B
근데 아편의 원료는 아편이에요.
Speaker B
그죠?
Speaker B
그걸로 모르핀을 만든단 말이에요.
Speaker B
누군가에게 모르핀이 필요할 때 종교는 모르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Speaker B
전 그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Speaker B
왜냐하면 결론적으로 강해지는 게 중요한 거지
Speaker B
내가 주체가 되어서 부딪혀서 깨지 멋진 일이긴 하지만
Speaker B
깨지는 것보다는 조금 의지해서 강해져도 되잖아요.
Speaker B
인간은 원래 존재론적으로 혼자 살아가는 존재도 아니고.
Speaker B
그런 의미에서는 전 종교를 믿는 게 오히려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준다면
Speaker B
멋있다고 생각하고.
Speaker B
저의 삶은 그랬던 것 같거든요.
Speaker A
이게 비하는 절대 아니고.
Speaker B
아 예.
Speaker A
예 제가 개념적으로 들어봤을 때 개쩌는 아이템이 있는데
Speaker A
이거 안 쓰고 해서 중간에 포기할 바에는 아 내 캐릭터 잘 안 크네 나 망했어.
Speaker A
뭐 이 던전에서 살아남지 못하는데 했을 때 주어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고
Speaker A
너무나 잘 만든 아이템이 있는데 이걸 굳이 왜 안 쓰냐? 이런 개념이랑도
Speaker B
꽤 비슷해요.
Speaker B
이건 실용적인 접근이니까.
Speaker B
여기에 첨언을 하나 하자면 보통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정리해서 에센스만 듣잖아요.
Speaker B
아 용서!
Speaker B
근데 예수님의 행적을 봐야 돼요.
Speaker B
혹시 아세요?
Speaker A
저는 아예 모르죠.
Speaker B
예수님이 어떻게 시작하냐면 예루살렘이 서울이에요.
Speaker A
네.
Speaker B
갈릴리는 해남 정도거든요.
Speaker B
해남.
Speaker B
해남에서 이제 완전 촌구석에서 가난한 집에서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태어난 예수라는 존재가 갑자기
Speaker B
30살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크다가 '아 옆집 예수 그냥 멍청한 애지.
Speaker B
'쟤는 육체노동하는 애지.'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부터 애가 이상해진 거예요.
Speaker B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뭐야 얘 약간 통찰이 쩌는데?'
Speaker B
그래서 점점 종교 지도자들이 있잖아요.
Speaker B
오늘날로 치면 우리나라의 약간 교수급.
Speaker B
이런 어떤 존경받는 뛰어난 학자들과 대화하는데 다 깨부수는 거예요.
Speaker B
다 깨부수지.
Speaker B
그리고 금기가 있어요.
Speaker B
절대 저 죄인들 세리라고 하거든요.
Speaker B
세금을 걷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은 매국노예요.
Speaker B
그러니까 매국노들, 창녀들, 병자들 이런 인간들이랑 어울리면 안 돼.
Speaker B
내가 더러워져.
Speaker B
이게 유대교의 태도거든요.
Speaker B
안 돼.
Speaker B
그러면 안 돼.
Speaker B
근데 그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서 같이 어울려 노는 거예요.
Speaker B
술 퍼마시고.
Speaker B
되게 파격적인 존재인 거예요.
Speaker B
그래서 그 존경받는 학자들은 때려 부서 가지고 혼내고
Speaker B
그 멸시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서 친구가 돼 가지고
Speaker B
그 사람들을 고쳐주기도 하고 위로해주기도 하고
Speaker B
말씀 가르치기도 하고 막 이러면서 되게 이상한 사람이 등장하니까
Speaker B
파격이 일어난 거죠.
Speaker B
그래서 돌풍이 돼 가지고 제자들이 막 모이기 시작해서 예루살렘에 갈 때는
Speaker B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행진하는 거대한 새로운 정치 지도자가 된 거예요.
Speaker B
사실은.
Speaker B
근데 그 예수가 결국 어떻게 하냐면 하는 짓이 뭐냐면 성전에 들어가서
Speaker B
'너네 이 종교인들 다 썩어빠진 놈들' 하고서 노끈을 채찍처럼 만들어 가지고 다 엎어 부수고.
Speaker B
예수님 되게 파격적인 분이거든요.
Speaker B
쌍욕하고.
Speaker B
'너네... (쌍욕) 하나님 욕되게 하지 마.'
Speaker B
쌍욕하고 그리고 이분이 접수해 가지고 예루살렘 평정하나?
Speaker B
왕이 되나?
Speaker B
그 순간에 십자가에 달려 죽은 거거든요.
Speaker B
근데 왜 죽었냐면
Speaker B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부터 목적은 죽는 거예요.
Speaker B
내가 죽어야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Speaker B
그러니까 이거는 제가 봤을 땐 되게 영웅적인 이야기인 거죠.
Speaker A
맞죠.
Speaker B
충분히 강하고 힘이 있고 위대한 하나님의 권능을 쓸 수 있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가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왕이 될 수 있는데
Speaker B
그 중요한 순간에 그걸 포기하고 십자가를 거부할 수 있거든요.
Speaker B
근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냐면 예수는 자신의 생명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거예요.
Speaker B
그걸 위해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이라고 하는 가치를 포기할 수 있다는 게 되게 영웅적이거든요.
Speaker B
그러니까 기독교의 가치는 단순히 이렇게 유약하게 부들부들하게
Speaker B
용서 이게 아니라.
Speaker B
세상의 손가락질과 박해와 억압 속에서도 정의와 선을 위해서 약자를 대변하고
Speaker B
죽음까지 감내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제가 믿는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예요.
Speaker B
그게 저를 이끌어 가니까.
Speaker B
어 저는 살만합니다.
Speaker A
굉장히.
Speaker A
저는 예술을 전공했었거든요.
Speaker A
근데 서사.
Speaker A
드라마라고 한다면.
Speaker A
어떤 영웅이 태어나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Speaker A
극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끝에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는 게 굉장히.
Speaker A
잘 짜여진 구조라고 해야 되나?
Speaker B
문학적으로 되게 뛰어난 구조예요.
Speaker A
예 그 그렇게 들리니까 반대로 거시적인 입장에서는
Speaker A
아 옛날 사람들이 시대적 상황을 담아서 그때 일어났던 것들을 이렇게 잘 믹스하고 잘 짜여서
Speaker A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게끔 무언가 반영된.
Speaker B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에요.
Speaker A
아 그런가요?
Speaker B
왜냐하면 복음서라는 건 실제로 문학적으로 편집이 되어 있어요.
Speaker B
물론 당시에 전기라고 해서 어떤 사람의 일생을 그리는 당시의 고대 역사 서술 방식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Speaker B
오늘날의 역사 서술은 되게 객관적이지만 고대의 서술은 물론 객관적이긴 한데 그 안에 신화나 시나
Speaker B
여러 문학적인 기법들이 들어가 있으니까 그걸 우리가 알긴 어렵죠.
Speaker B
근데 한 가지는 확실히 뭐냐면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처형 이후에.
Speaker B
여기까진 확실하거든요.
Speaker B
따를 이유가 없어요.
Speaker B
왜냐하면 실패한 메시아는 그냥 망한 거예요.
Speaker B
그 주식 투자했는데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된 거예요.
Speaker B
그럼 따를 이유가 없는데.
Speaker B
그들이 뭔가 이상한 이유 때문에 착각일 수도 있죠. 환각을 보았을 수도 있고 미쳤을 수도 있고.
Speaker B
조현병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지만 뭔가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Speaker B
미친 짓을 해서 수많은 박해를 견디고 이상하게 이 종교가 탄생했다까지는
Speaker B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에요.
Speaker A
이게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도 있는데 방금 실패한 메시아라고 비유를 들어주셨잖아요.
Speaker A
그게 죽음 때문에 실패한 메시아가 된 거잖아요.
Speaker B
왜냐하면 메시아의 역할은
Speaker B
독립 전쟁에서 승리하는 거예요.
Speaker B
하나님의 약속이 그거거든요.
Speaker B
메시아가 오면 독립 전쟁을 이길 것이다.
Speaker B
어 로마한테 우리가 식민지배를 받는데 이길 거야.
Speaker B
처참히 지거든요.
Speaker A
알겠습니다.
Speaker A
그래도 많이 개념적으로 저에게 많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Speaker A
그래서 저는 신앙심을 갖는 것 자체가 앞전에 얘기했던 것도 있었고
Speaker A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사실이 된다라는 옛말이 있거든요.
Speaker A
그런 것처럼 제가 무언가를 바라는 순간 제가 스스로가 작아지는 거죠.
Speaker A
예를 들어 저에게 무언가 장벽이 있다면 부끄러움인 것 같거든요.
Speaker A
사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도덕적으로 완벽하거나 그러지 못할 거라고 생각을 해요.
Speaker A
나도 나 스스로 나만이 아는 부끄러움이 있을 거고.
Speaker A
양시무스님도.
Speaker B
아 있죠.
Speaker A
양시무스님.
Speaker A
있을 거란 말이죠.
Speaker A
근데 그런 거를 차치하고 '난 그러지 않을 거야'가 됐든
Speaker A
'난 그렇지 않아. 나 실제로 그런 사람 아니야'가 됐든
Speaker A
무언가 뱉는 순간 나가 나 자신을 속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Speaker A
사실은 내가 부끄럽고 나는 보잘것없고 나약한 존재임을 인지하고
Speaker A
이거를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될 것 같은데
Speaker A
믿는 행위를 통해 가지고 마치 내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 같이
Speaker A
난 실제로 레벨업 하지 않았는데 이 행동을 통해서 레벨업 했다고 느껴져 버리게 되는 것일까 봐
Speaker A
더 가지 못하겠는 것도 있거든요.
Speaker A
이러한 것도 혹시.
Speaker B
이해는 가요.
Speaker B
크게 보면 그렇지만 그 안에 구체적인 어떤 메커니즘이 있잖아요.
Speaker B
복잡한 메커니즘 두 가지만 짚고 가면 시원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Speaker B
그러니까 첫째는 우리가 나의 어떤 연약함을 마주하는 것.
Speaker B
나의 심연을 보는 것.
Speaker B
어려운 일입니다.
Speaker B
되게 어려워요.
Speaker B
그건 되게 큰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고.
Speaker B
아예 인지를 못 할 수도 있어요.
Speaker B
근데 그게 가능하게 하는 건 뭐냐면은 비난이나 '올바로 살아야 돼'가 아니라
Speaker B
풀어주는 거거든요.
Speaker B
'야 괜찮아.
Speaker B
말해봐.
Speaker B
괜찮아.' 야 큰 형이나 아버지 같은 분들이 와서 '야 얘기해봐.
Speaker B
괜찮아.'
Speaker B
그러면 술술 얘기할 수 있거든요.
Speaker B
근데 저는 기독교의 신앙이라는 게 뭐냐면 신이라고 하는 무한한 사랑을 가진 분 앞에
Speaker B
모든 인류사를 보면서 수많은 범죄들을 보아오고 그런 사람 앞에 가서
Speaker B
나의 어떤 밑바닥을 꺼내는 거거든요.
Speaker B
근데 꺼내면서 나도 볼 수 있는 거예요.
Speaker B
나를 직면할 수 있는 되게 좋은 기회이다.
Speaker B
이게 첫 번째이고.
Speaker B
두 번째는 기독교는 이렇게 얘기하는데
Speaker B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Speaker B
하면서 믿음을 가지고 갔던 사람들이 결국에는 그 약속을 이루었다.
Speaker B
이런 얘기들을 하거든요.
Speaker B
그래서 이렇게 너네는 이미 받은 줄로 생각하고
Speaker B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기도해라.
Speaker B
기대하는 것이 우리를 이끌어간다고 얘기를 하는데
Speaker B
아까 우리가 처음에 얘기했던 것처럼 말하는 것이 우리를 이끌어갈 수도 있잖아요.
Speaker B
그 괴리감이 우리를 힘들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우리를 끌어갈 수도 있는 거죠.
Speaker B
음.
Speaker B
양면적인 힘이 있는 것 같아요.
Speaker B
근데 제가 믿기로는 믿지 않는 사람이든 믿는 사람이든 특히 어떤 거대한 일들을 이룬 사람들은
Speaker B
꼭 말하라고 하는 것 같아요.
Speaker B
그래서 저도 말하거든요. 그래서 목사왕 된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Speaker A
말해야 좋은 것 같아요.
Speaker A
그래서 저도 궁금하고 잘 모르겠으니까 들어보는 거고 그러려고 또 모신 것도 있고.
Speaker A
그럼 방금 하신 말씀 중에서 제가 또 하나 의문은 나를 내가 나 스스로
Speaker A
오롯이 마주 봐야 저는 좋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왜 그것을 신 앞에 가서
Speaker A
해야 되는지에 대한 단순한 그냥 호기심 의문이 생기거든요.
Speaker A
그런 것도 혹시 얘기가 가능하실까요?
Speaker B
아까 했던 얘기를 다시 한번 하자면은
Speaker B
혼자서 나를 마주하는 것보다 자비로운 사람 앞에서 나를 마주할 때 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할 수 있다라고
Speaker B
저는 생각을 하고 더 정직하게 나 자신을.
Speaker B
그리고 그 외에 내가 나를 마주하는 게 안 될 건 없죠.
Speaker B
다만.
Speaker B
이건 약간 불교의 인사이트인데.
Speaker B
나라고 하는 자아는 사실은 굉장히 많은 것들의 집합체이거든요.
Speaker B
뇌과학적으로 봤을 때 자아라고 하는 게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불확실해요.
Speaker B
그래서 저는 그런 의미에서 불교의 통찰이 되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Speaker B
나라고 하는 어떤 개념은 좌뇌가 정당화하고 설명해 낸 어떤 형태와 상태잖아요.
Speaker B
불안정한 잡음이란 말이에요.
Speaker B
그래서 열반이 뭐냐면 불이 꺼졌다는 거거든요.
Speaker B
마치 이렇게 컴퓨터 전원 켜고 하면 뭔가 이미지가 나타나지만 그건 실상이 아니라 허상이잖아요.
Speaker B
불이 꺼지는 거죠.
Speaker B
그죠?
Speaker B
근데 문제는 뭐냐면 내가 나를 마주할 때 그 엄청난 잡음들이 있는데
Speaker B
제가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건데 신 앞에 독대하는 순간에는
Speaker B
제 경험으로는 모든 것들이 고요해져요.
Speaker B
찬송가에 이런 표현이 있는데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Speaker B
하는 것처럼.
Speaker B
되게 고요하고 또렷하게 오히려 나를 볼 수 있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Speaker B
그래서 도움이 되기 때문에 신 앞에 나아가서 나를 보는 것이 전 좋다고 생각합니다.
Speaker A
감사합니다.
Speaker A
방금 말씀해 주신 건 신앙심을 갖게 된 혹은 마주하게 된
Speaker A
양시무스님의 경험인 것 같아요.
Speaker A
그러면 다른 분들도 그런 신앙심을 갖게 된다라든가
Speaker A
신을 마주할 수 있는 뭐 기도 응답이라는 단어도 있더라고요.
Speaker A
그런 거를 좀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수단과 방법이 존재하나요?
Speaker B
있는데 되게 단순해요.
Speaker B
그냥.
Speaker B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계속해서 묵상하고
Speaker B
기도하고.
Speaker B
찬양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거.
Speaker B
이거밖에 없어요.
Speaker B
물론.
Speaker B
그 안에 더 뛰어난 영성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기도를 도와주면.
Speaker B
뛰어난 영성을 가지고 있는 목사님이 있으면 이런 얘기들을 붙이지만.
Speaker B
엄밀히 얘기해서 성경이 우리에게 약속해 준 방법은 딱 그거밖에 없어요.
Speaker B
그러니까 이런 점에서는.
Speaker B
개신교는 어떤 한 개인의 영적인 수준을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는 것 같아요.
Speaker B
모두가 누구나 원한다면 나아갈 수 있고.
Speaker B
그러면은 내가 더 깊은 영성이 있으면 하나님의 세계를 조작할 수.
Speaker B
절대 안 돼요.
Speaker B
하나님이 사실은 원하시는 대로 이끌어 가시는 거예요.
Speaker A
다르게 들릴 수도 있는데.
Speaker A
방금 말씀하신 어떤 행위 방법들이 제가 봤을 때는 불교에서 스님들 처음에 입문하시면은
Speaker A
빗자루질 시키잖아요.
Speaker B
예.
Speaker A
법률을 공부하기 전에 일단 쓸어라.
Speaker A
약간 고런 느낌 비슷한 맥락 맞을까요?
Speaker A
아닌가요?
Speaker B
근데 아예 그거보다는.
Speaker B
매주 절에 가라.
Speaker B
가서 절 이런 것들을 충실하게 해라.
Speaker B
그리고 계속해서 파엄경 이런 것들을 읽어라.
Speaker B
그런 것들을 계속 일상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해라.
Speaker B
이런 어떤 기본적인 신앙생활 정도면 충분하다인 거예요.
Speaker A
완전히.
Speaker A
이해했습니다.
Speaker A
아 너무 감사합니다.
Speaker B
네.
Speaker B
I support you.
Speaker A
It's sincere.
Speaker B
It's sincere.
Speaker A
It's sincere.
Speaker B
Thank you sincerely.
Speaker A
Next story.
Speaker B
I'll hold your hand and pray for you.
Speaker A
How do I do it?
Speaker B
Yes, just hold it like this.
Speaker B
I'll pray.
Speaker B
If there are things that are not satisfied in the visible world,
Speaker B
you can face the living God.
Topics:기독교무신론자 질문예수님삼위일체신앙용서성경 이야기니체믿음의 본질종교와 철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