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와 김부식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고증하며, 역사서 편찬 배경과 비판을 심층 분석한 KBS 역사스페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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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Takeaways
- 삼국사기는 김부식 개인의 왜곡된 역사서가 아니라 당시 자료에 근거한 공식 편찬물이다.
- 삼국사기에 대한 비판은 시대적, 정치적 배경에 따라 다양하고 상충하는 견해가 존재한다.
- 고구려 초기 역사 삭제 의혹은 신빙성이 낮으며, 외부 자료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 삼국사기는 우리 고대사 연구에 필수적인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 보존과 복원 작업을 통해 삼국사기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What the video covers
-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이 편찬한 우리 고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서이다.
- 일제 식민 시기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 등은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로 비판하며 삼국사기를 왜곡된 역사서로 봤다.
- 삼국사기는 50권으로 구성되며, 조선 시대 목판 인쇄를 통해 후대에 전해졌다.
- 문화재 보존 작업을 통해 삼국사기의 원형을 복원하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 삼국사기 편찬은 김부식 개인의 관심이 아닌 고려 사회와 인종의 필요에 따른 공식 작업이었다.
- 김부식은 삼국사기 머리말에서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히 밝혔다.
- 삼국사기에는 사대주의적 시각과 자주적인 비판이 혼재되어 있어 단순한 사대주의 역사서가 아니다.
- 조선 시대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삼국사기에 대한 비판이 서로 상충하는 양상을 보였다.
- 일본 식민 사학자들은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허구로 폄하했으나, 현대 학계는 삼국사기의 고대사 자료 가치를 인정한다.
- 고구려 초기 역사 200년 삭제 의혹은 고구려 묘비명 자료로 반박되며, 삼국사기는 당시 자료에 충실한 역사서임이 입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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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aker A
수만 권의 고서를 소장하고 있는 성암 고서 박물관.
Speaker A
삼국사기 진본은 여기서도 별도로 보관돼 있다.
Speaker A
조심스럽게 책을 싼 종이를 열면 삼국사기는 모습을 드러낸다.
Speaker A
삼국사기는 모두 50권. 그러나 아홉 책으로 묶여져 있다.
Speaker A
이 책이 남아 있었기에 우리의 고대사도 온전할 수 있었다.
Speaker A
그러나 삼국사기는 근대에 들어와 모진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Speaker A
일제 식민 시기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
Speaker A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민족 정신을 일깨워야 했기에 고려 왕을 황제로 부르고 금나라를 정벌하자는 묘청의 자주적인 주장에 주목했다.
Speaker A
묘청이 김부식에게 패하므로 이 땅에는 사대주의가 자리 잡았다고 보았다.
Speaker A
김부식에 대한 비판은 삼국사기로 이어졌다.
Speaker A
김부식은 사대주의 사서인 삼국사기를 남기고 민족 주체적인 역사는 말살해 버렸다고 주장했다.
Speaker A
이러한 주장은 지금도 그 위력을 잃지 않고 있다.
Speaker A
한일간 신문은 노골적으로 삼국사기를 비판하고 인터넷에는 김부식을 민족 반역자라고까지 규정하는 글들이 범람하고 있다.
Speaker A
김부식은 왜 삼국사기를 지었을까?
Speaker B
오늘은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는 삼국사기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Speaker B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이 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서입니다.
Speaker B
이 책이 없었다면 우리 고대사에 많은 부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Speaker B
그러나 삼국사기는 그동안 수많은 부정적인 평가에 시달려 왔습니다.
Speaker B
저자 김부식이 사대주의자이기에 삼국사기도 사대주의에 물든 역사서라는 것입니다.
Speaker B
심지어 저자인 김부식이 사료를 조작했다는 비난까지 있었습니다.
Speaker B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인데요. 여기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Speaker B
묘청 등이 패하고 김부식이 이겼으므로 조선사가 사대적, 보수적, 속박적 사상인 유교 사상에 정복되고 말았다.
Speaker B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 선생의 주장입니다.
Speaker B
그런데 과연 김부식에 대한 이런 평가는 다당한 것일까요?
Speaker B
또한 삼국사기는 사대주의자가 왜곡한 사서에 불과한 것일까요?
Speaker B
오늘은 삼국사기에 대한 그동안의 비판이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인지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Speaker A
삼국사기 판각 작업이 1512년 경주부에서 있었다.
Speaker A
전체 50권 분량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천장 가량의 목판을 일일이 새겨야 한다.
Speaker A
중종 7년 경주 부사 이계복은 삼국사기가 점점 구하기 어려워지자 혹시 삼국사기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염려했다.
Speaker A
삼국사기를 새로 인쇄해 펴내기로 하고 여러 고을에 나눠 판을 새기도록 했다.
Speaker A
그래서 현재 남아 있는 삼국사기는 같은 책 속에 여러 가지 글자 꼴이 나타난다.
Speaker A
이때 목판으로 찍어낸 삼국사기 덕으로 조선 시대의 유생들이 우리의 역사를 잊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Speaker A
삼국사기는 삼국의 본기 28권과 연대별로 왕력을 기록한 연표 3권.
Speaker A
제사 복식 지리지 등으로 구성된 잡지 9권.
Speaker A
인물지인 열전 10권으로 구성돼 있다.
Speaker A
국보 525호인 옥산서원 소장 삼국사기.
Speaker A
이 책은 지금 보존 처리를 받고 있다.
Speaker A
문화재 보존을 전문적으로 하는 정재 문화재 연구소.
Speaker A
삼국사기가 모두 해체되어 한 장 한 장 펼쳐져 있다.
Speaker A
책이 묶여진 후 500년 만에 처음으로 보수를 위해 해체된 것이다.
Speaker A
500년 동안 서원의 유생들이 넘기고 보았을 삼국사기는 곳곳이 달아 없어지고 찢어져 있다.
Speaker A
부로 해체된 삼국사기는 한지의 올 하나하나를 살려 붙이는 세심한 보존 처리를 거친다.
Speaker A
보존 작업이 끝나면 책은 더욱 원형에 가깝게 된다고 한다.
Speaker C
이게 옥산서원에서 온 삼국사기인데요. 이 유물들이 그러니까 오랜 세월 지나면서 많이 사용을 하신 거 같아요.
Speaker C
그러니까 다른 책들에 비하면 굉장히 보존 상태는 양호한데 오래 사용하셨기 때문에 오염이 있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오래 쓰셔서 달아서 없어진 부분들이 있으세요.
Speaker C
그래서 그 부분들을 보강하고 그리고 오염을 제거하는 목적으로 지금 보존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Speaker A
삼국사기 한 장 한 장이 매우 소중하게 처리되고 있다.
Speaker A
그런데 책이 만들어지던 고려 시기에도 삼국사기 편찬은 매우 가치 있는 일로 여겨졌다.
Speaker A
최우보의 묘지명은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Speaker A
이 묘지명은 삼국사기 편찬 관련자들이 삼국사기 저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잘 말해 준다.
Speaker A
묘지명에는 김부식이 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저술했음을 밝히고 있다.
Speaker A
최우보는 교정을 보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찾아 바로잡는 공을 세웠다고 한다.
Speaker A
최우보는 삼국사기 편찬 작업에 참가하고 교정을 본 것을 그의 일생의 여러 일 중에 자랑스러웠던 기억으로 무덤 속까지 가져간 셈이다.
Speaker A
삼국사기 편찬은 김부식의 개인적인 관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Speaker A
고려 사회가 전 왕조의 역사를 정리해 둘 필요가 있었고 인종과 김부식은 그 필요에 따랐던 것이다.
Speaker D
12세기 인종을 전후한 시기에 그 무르익은 그 문화적인 감각이 아니었다면 삼국사기는 편찬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Speaker D
그 당시 문화가 그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는 거겠죠.
Speaker D
그런 점에서 삼국사기는 그 시대의 문화적 감각.
Speaker D
문화 정도를 갖다 그대로 반영해 준 그런 시대적 산물이라고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겠습니다.
Speaker A
김부식은 당시의 존재하던 삼국의 고기는 중국 역사에 비하면 내용이 너무 간단해 빠진 부분이 많고.
Speaker A
문장이 나빠 교훈을 줄 수 없다고 한다.
Speaker A
또한 선비들이 우리 역사를 잘 모르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책을 다시 쓰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Speaker E
머리말에서 결국은 내가 이 책을 왜 써야 되느냐 하는 그 이유가 우리나라의 그 글 깨나 하는 사람들이.
Speaker E
그렇잖아요. 중국 건 줄 잘 잘 알면서 내 걸 하나도 모르지 않습니까?
Speaker E
그러니 이게 얼마나 창피하냐. 결론적으로 이 책을 쓴 동기는 나를 알자. 우리를 알자는 뜻이 기본 틀입니다.
Speaker B
삼국사기가 사대주의에 물든 역사서라는 비난은 근거가 전혀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Speaker B
백제가 당나라에 멸망하자 김부식은 이렇게 말합니다.
Speaker B
대국에 죄를 얻었으니 그 망하는 것도 당연하다.
Speaker B
이러한 주장과 함께 신라의 연호 사용을 비난하는 사론을 썼기에 김부식은 사대주의자로 낙인 찍히게 된 것입니다.
Speaker B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이런 사대적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Speaker B
당나라의 황제인 당태종이 죽자 김부식은 이렇게 말합니다.
Speaker B
동방을 패어로 만들어 즐기려다 죽어서야 그만두었다. 김부식은 중국 역사에서는 성군이라 칭송받는 당태종을.
Speaker B
전쟁을 즐기다 죽어서야 그만둔 침략 군주로 비난하고 있기도 합니다.
Speaker B
이처럼 어떤 구절을 보면 삼국사기는 사대주의에 물든 사서가 되었다가.
Speaker B
또한 객관적이고 자주적인 역사서가 되기도 하는 것이죠.
Speaker B
그렇다면 전체를 봤을 때 삼국사기는 어떤 사서가 되는 것일까요?
Speaker A
조선 시대가 되면 삼국사기는 전혀 다른 방향의 비난을 듣게 된다.
Speaker A
김부식이 사대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하지 않아 불경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Speaker F
삼국사기가 어 조선 시대 선비학자들 눈에는 신비적이고 비현실적인 사고들까지도 포함하고 있다고 하는 점에서 그리고 조선 당대보다 덜 모화적이고 사대적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비난의 표적이 됩니다.
Speaker F
반면에 이제 식민지 시대가 되면 어 단재 신채호 선생님을 비롯해서 많은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이.
Speaker F
민족의 주권이 외세에 의하여 유린되고 있던 현실 속에서 삼국사기가 가지고 있는 중세 중국 중심적 세계관에 동의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Speaker F
그러다 보니까 고려 당대의 비판의 내용과 조선 초의 그것 그다음에 실학자들이나 일제 시대 식민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비판의 논조가 서로 상충을 하는 것입니다.
Speaker F
그러니까 결국 각자가 처해 있는 현재적인 입장에 충실한 관점으로 삼국사기를 비판하다 보니까.
Speaker F
오히려 반대되는 비판들도 속출하고 있고 그러한 어 무책임한 비판이 범람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Speaker A
삼국사기에 대한 가장 심각한 비판은 삼국사기의 내용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Speaker A
일제 식민 사학자인 츠다 소키치 스에마스 등은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은 전연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Speaker A
이들은 주로 일본 서기의 관점에서 삼국사기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게 된다.
Speaker A
츠다 소키치는 삼국의 상대 기사는 모두 믿을 수 없는 허구라고 주장했고 백제의 경우 근초고왕 때가 돼야 신뢰할 수 있다고 했다.
Speaker A
스에마스의 경우는 신라 초기의 왕명마저 조작된 것이며 초기의 연대는 전연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Speaker A
이런 주장은 우리 역사 학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Speaker G
이 삼국사기의 기록이 날조되고 조작된 것이다라고 그 폄하해 가지고 삼국사의 기록 자체를 불신하는 어 그런 그 학풍이 그 이 대단히 강했습니다.
Speaker G
그 결과 우리나라의 원로 그 사학자들도 어 삼국사의 초기 기록을 거의 불신했는데 어 실은 그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그 불신하고서 어 우리 고대사를 그 설정할 수가 없습니다.
Speaker G
비록 고려 인종 때에 1145년에 삼국사기가 쓰였지만은 삼국사기가 근거로 한 그 자료는 고대의 그 이 자료들 이 자료들이 그 이용됐기 때문에 우리는 고구려나 백제 신라의.
Speaker G
어 조그마한 수도 중심의 그 성읍 국가에서 어 영역 국가 그 정복 사업을 벌리는 그 이 국가의 발전사가 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어 우리 삼국사기는 대단히 소중한 자료입니다.
Speaker A
삼국사기 50권에는 신라의 기록이 가장 많다.
Speaker A
뿐만 아니라 국력이 가장 미약했던 신라가 고구려보다 먼저 건국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Speaker A
그렇기 때문에 경주 출신인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신라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고구려사를 고의로 삭제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이 줄곧 제기돼 왔던 거죠.
Speaker A
과연 김부식은 신라의 역사를 높이기 위해 고구려의 초기 역사 200년을 삭제한 것일까요?
Speaker A
그런데 이 자료를 한번 보시죠.
Speaker A
당나라로 건너가 죽은 고구려 유민 고자의 묘비입니다.
Speaker A
여기에는 고구려가 건국되어 망하기까지 708년이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Speaker A
이는 중국 기록보다 오히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흡사합니다.
Speaker A
김부식이 고구려의 초기 역사 200년을 삭제한 것이 아니란 증거인 셈입니다.
Speaker A
이처럼 삼국사기는 김부식이 자신의 의도대로 고쳐 쓴 역사서가 아니라.
Speaker A
당시까지 있었던 문헌과 자료에 철저히 근거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Topics:삼국사기김부식고구려 역사사대주의신채호역사 왜곡고대사문화재 보존역사 비판고려 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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