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어머니를 찾아서. 신화가 숨긴 우리 민족의 뿌리!! (한자82강-백조처녀) — Transcript

선녀와 나무꾼 설화를 통해 부여와 부랴트 민족의 건국 신화와 고대 민족 기원을 탐구하는 역사 강의입니다.

Key Takeaways

  • 선녀와 나무꾼 설화는 우리 민족의 고대 역사와 신화를 담은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 부여와 부랴트 신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여인과 지상의 남자의 결합으로 민족 기원을 설명한다.
  • 기록자의 시선과 목적에 따라 신화의 내용과 표현이 달라질 수 있다.
  • 민간 구전과 공식 신화는 서로 다른 층위에서 존재하며, 두 층위 모두 민족 정체성 형성에 기여한다.
  • 부랴트 신화는 민족의 자부심과 정체성의 원천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Summary

  •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고대 역사와 신화를 담고 있다.
  • 부여와 부랴트 민족의 건국 신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여인과 지상의 남자의 결합을 통해 민족의 기원을 설명한다.
  • 부랴트 버전의 백조 처녀 신화는 19세기 민속학자에 의해 채집되었으며, 알타이 산맥과 바이칼 호수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설화이다.
  • 한국 버전과 부랴트 버전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며, 특히 아이들의 존재와 신화의 결말에서 차이가 있다.
  • 부여 신화는 왕권 정당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기록자의 시선에 따라 신화의 내용과 색채가 달라졌다.
  • 부여와 부랴트 민족명은 유사하지만 부랴트라는 명칭은 13세기 초 몽골 제국 시기에 생겨난 통합 명칭이다.
  • 선녀와 나무꾼 신화는 북방 샤머니즘의 우주 모델을 반영하며, 하늘과 땅의 결합을 통한 민족 기원을 상징한다.
  • 고구려와 만주 건국 신화도 부여 신화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며, 민간 구전과 공식 신화가 병존했다.
  • 신화는 민족의 정체성과 자부심의 원천이며, 사료 부족한 고대사를 보완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 국가 멸망과 함께 신화의 존재 이유가 사라졌으나, 설화와 신화를 통해 고대 민족의 뿌리를 다시 찾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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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
Speaker A
안녕하세요. 강준식입니다.
00:06
Speaker A
먼저 멤버십에 가입해 주신 차보영님, 씨보드 4911님, 그리고 재가입해 주신 임성욱님, 이병철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꾸준히 후원해 주고 계신 기존의 가입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00:32
Speaker A
여러분, 나는 오늘 역사를 강의하러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00:41
Speaker A
나는 여러분의 어머니를 찾으러 왔습니다.
00:48
Speaker A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 바이칼 호수가의 여인이 내려왔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여인이었죠.
00:59
Speaker A
그 여인이 이 땅의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고 다시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그 아이의 후손이 나라를 세웠고 그 나라가 또 다른 나라를 낳았고 그 나라들이 무너지면서 이야기만 살아남았습니다.
02:01
Speaker A
그 이야기가 바로 여러분이 어릴 때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선녀와 나무꾼입니다.
02:10
Speaker A
선녀와 나무꾼은 동화가 아니에요. 그것은 수천 년 전 시작된 우리 민족의 첫 번째 역사입니다.
02:22
Speaker A
다만 나라가 사라지면서 역사도 사라졌고 사라진 역사의 자리에 동화가 들어앉은 거예요.
02:32
Speaker A
오늘 나는 그 동화 속에서 사라진 역사를 다시 끄집어내려고 합니다.
03:22
Speaker A
왜냐하면 우리의 고대사는 사료가 태부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부여의 경우도 사실은 비슷합니다.
03:35
Speaker A
우선 최초의 역사서인 사기에 보면은 연나라는 북쪽으로 오환·부여와 이웃해 있다. 라고 부여에 대한 기사가 딱 한 줄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고 그 다음에 편찬된 그 한서도 마찬가지예요.
03:57
Speaker A
다행히 진수가 편한 삼국지에 부여에 대한 기록이 어느 정도 실려 있기는 한데 그것도 서기 244년 위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하면서 얻은 군사 정보에 기반한 기록이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역사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05:03
Speaker A
그 뒤 5세기 유송에서 편찬한 후한서와 7세기 당나라에서 편찬한 진서에 부여조가 실리지만 다 삼국지의 기록을 가감한 것으로 내용은 오히려 짧습니다.
05:26
Speaker A
아, 그리고 우리나라의 삼국유사가 있네요. 부여의 건국 과정을 다룬 북부여와 동부여의 기사가 실려 있기는 한데 길이가 너무 짧아요.
05:42
Speaker A
그 밖에 부여에 대해 아주 단편적인 문장이 산발적으로 발견이 되며 중국 쪽에서 부여 거라고 주장을 하는 길림 일대 유물이 약간 남아 있다는 정도예요. 이처럼 온전한 역사서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부여는 특히 3세기 이전의 부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06:55
Speaker A
사서가 아닌 이야기꾼 할머니나 어머니의 입을 통해 전해 전해온 설화에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설화는 고대인이 경험한 실제의 역사적 사실을 상징이나 은유 또는 신적인 서사를 통해 전승된 기억된 역사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07:23
Speaker A
그런데 어떤 시점에 나는 그 초등학교, 우리 때는 국민학교라 그랬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교과서에서 재밌게 읽었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원래는 북방에서 내려온 설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알아보았더니 이 이야기의 초기 형태는 기원전 만 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요.
08:36
Speaker A
그런데 러시아 학자들과 몽골 학자들은 이 설화가 동서 전파의 교차에 위치해 있던 알타이 산맥 부근에서 기원했다는 학설을 내놓았습니다. 알타이 산맥 부근에서 형성이 되어 서쪽으로는 서쪽은 스칸다나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남쪽은 중국과 인도로 그리고 동쪽은 바이칼 호수를 거쳐 만주, 한반도, 일본으로 퍼져나갔다는 거예요.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무릎을 쳤습니다.
10:01
Speaker A
분포가 그 증거예요. 만일 선녀와 나무꾼의 얘기가 알타이 산맥에서부터 바이칼 호수를 거쳐 만주, 한반도 그리고 일본까지 같은 구조를 보인다면 이 문화권을 하나로 연결하는 어떤 공통 기원이 존재했다는 뜻입니다.
10:23
Speaker A
나는 바이칼 호수 쪽부터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호수 주변에는 부랴트 공화국이 있고 그 나라에 살고 있는 민족은 부랴트족인데 인구는 현재 98만 명 정도예요.
10:54
Speaker A
이곳에서 선녀와 나무꾼의 부랴트 버전을 최초로 채집한 학자는 19세기 미국의 민속학자 제레미아 커튼이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2:25
Speaker A
서양에서 흔히 스완 메이든 곧 백조 처녀로 알려진 이 부랴트 버전과 선녀와 나무꾼의 공통점은 호수나 연못에서 목욕을 하고 깃털옷이나 날개옷을 숨기며 둘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옷을 되찾아 하늘로 승천한다는 점이에요.
13:34
Speaker A
차이점은 부랴트 버전에서는 술로 남편을 취하게 하여 옷을 돌려받지만은 한국 버전에서는 아이 숫자가 차면 옷을 내주라는 사슴의 조언이 있었다는 점이며 부랴트 버전에서는 딸이 막으려고 하지만은 한국 버전에서는 아이까지 데려가 아무것도 안 남게 된다는 점인데 세부적인 차이점을 도표로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14:10
Speaker A
백조 처녀는 에세게 말란의 딸이었다고 하는데 에세게는 부랴트어로 아버지 말란은 대머리로 이 둘을 합치면 대머리처럼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곧 아버지 맑은 하늘 다시 말하면 천신 또는 하늘에서 세상을 비추는 태양의 딸이었다는 뜻이 됩니다.
15:24
Speaker A
이에 반해 한국 버전의 선녀는 옥황상제의 딸로 되어 있는데 이거는 도교적인 용어로 한국 버전에서는 알게 모르게 도교적인 요소가 들어와 있었다는 얘기예요.
15:41
Speaker A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을 하던 곳은 우리의 경우에는 금강산의 감호라는 연못이고 백조 처녀가 내려와서 목욕하던 장소는 바이칼 호수예요. 그리고 그 모습을 목격한 것이 한국의 경우는 나무꾼인데 부랴트의 경우는 사냥꾼이에요.
16:47
Speaker A
그런데 이 설화의 다른 버전을 보면은 사냥꾼의 이름은 호리도이이고 그 사냥꾼의 이름을 딴 호리도이-메르겐 도모그 곧 명궁 호리도이의 이야기가 원 제목이라고 합니다. 아내가 된 백조의 이름은 훈 슈분이며 그녀가 나온 아이는 여섯 명이 아니라 11명이었던 걸로 나와요. 그리고 선녀도 백조 처녀도 다 승천을 하지만은 한국 버전은 두 아이마저 하늘로 데려가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비극으로 끝나죠.
18:20
Speaker A
이에 반해 부랴트 버전에서는 11명의 아이가 남습니다. 그럼 지상에 남은 이 아이들은 누구냐? 학자마다 다 조금씩 다르게 기록을 하지만은 아이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18:40
Speaker A
이 아이들이 바로 부랴트족을 구성하는 11개, 11개 씨족의 조상들이라고 그래요.
18:48
Speaker A
그렇다면 이 스토리는 단순한 옛날 얘기가 아니라 신화였다는 얘기예요. 사실 백조 처녀의 스토리는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유럽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고 인도에도 있고 사실은 세계 도처에 다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이 이 신화의 원형이었을까요?
19:08
Speaker A
학자들은 알타이 산맥 곧 시베리아의 심장부에서 이 이야기가 완성되었다고 보는데 그럴 만한 증거가 있어요. 즉 유럽 버전에서는 이 이야기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그냥 슬픈 러브 스토리예요.
20:13
Speaker A
중국 버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랑직녀 곧 우리나라에서 견우직녀로 알려진 이 스토리도 본래는 백조 처녀가 은하수를 건너 지상 남자를 만나는 스토리로 출발했던 것 같지만은 유교 이념이 백조 처녀를 베짜는 직녀로 만들어 가지고 7월 7성날 까치가 만들어 준 그 오작교에서 소모는 견우와 1년에 한 번씩 만났다 헤어진다는 식의 사랑 이야기로 변형이 됩니다. 애틋하죠.
20:53
Speaker A
하지만 여기에도 왜 이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요. 그러나 부랴트 버전을 보세요. 이 신화는 우리 민족이 왜 여기 있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21:53
Speaker A
백조 처녀의 아이들이 부랴트 씨족의 시조 시조들이 되었다는 얘기예요. 그러니 이게 원형입니다.
22:03
Speaker A
민족의 기원을 설명하는 신화가 나중에 로맨스로 세속화되었던 것이지 로맨스 이야기가 나중에 시조 신화로 변화가 되었던 게 아니에요. 여기서 한 걸음 더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22:24
Speaker A
사냥꾼의 이름 호리도이에서 호리는 씨족 이름이고 도이는 무엇무엇에 속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결국 호리도이는 호리 씨족의 사람이란 뜻이 됩니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그냥 한 사람의 사냥꾼으로 다루어지지만 원 제목은 호리도이-메르겐 도모그인데 여기서 메르겐은 활을 잘 쏘는 명궁이란 뜻이에요. 그래서 제목 전체의 뜻은 명궁 호리도이의 이야기가 됩니다.
23:49
Speaker A
명궁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어 아니에요? 동명이다 주몽이다 해 가지고 말이죠. 하지만 여기서의 테마가 아니므로 다시 돌아가죠. 호리도이와 결혼하여 11명의 아이를 낳았던 여인의 이름은 훈 슈분이라고 합니다.
24:12
Speaker A
훈은 백조라는 뜻이고 슈분은 새. 그래서 이 둘을 합치면 백조새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훈이란 단어가 훈족이나 흉노를 연상을 시켜서 흥미를 끌지만 이 역시 여기서의 테마는 아니므로 다시 돌아가기로 하죠.
25:18
Speaker A
부랴트 쪽에서는 이 신화의 백조의 이름을 붙인 훈 슈분 도모그 백조새 이야기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한다 그래요. 이 도모그가 이 이야기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25:40
Speaker A
서양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변형이 되었어요. 독일에서는 도난당한 베일, 아일랜드에서는 리르의 아이들, 러시아에서는 백조 공주, 스웨덴에서는 백조 망토 또는 백조 외투, 북유럽에서는 볼룬드의 노래로 변형이 되었고 그리고 차이콥스키의 발레 백조의 호수로 전 세계 알려지게 되었죠. 그런데 서양의 이 슬픈 러브 스토리들은 하나같이 원형의 핵심을 잃어버렸어요. 우리 민족이 왜 여기 있는가? 라는 그 본질적인 질문 말입니다.
27:14
Speaker A
부랴트 신화는 이 본질적인 질문과 함께 우리의 시조 어머니는 하늘에서 오신 분이다. 다시 말해 보통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그 후손인 우리도 천신의 혈통이다. 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요컨대 하늘의 딸이 지상에 내려와서 새로운 민족을 낳고 하늘로 다시 돌아갔다는! 이것이 바로 이 신화의 요체인 거예요. 부랴트 민족에게 자부심의 원천이 되는 학문에도 직관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이 질문을 좀 드리고 싶어요.
28:43
Speaker A
부랴트 버전을 만든 사람이 혹 부여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부여인이나 부여인의 조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질문 말입니다.
29:04
Speaker A
솔직히 우리는 부여와 부랴트의 관계를 알지 못해요.
29:15
Speaker A
그럼 이 둘의 관계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그 질문의 답으로 자주 등장하는 게 종족명입니다. 부여 Bu-yeo와 부랴트 Bu-ryat의 그 이름은 서로 비슷해 보이니까 말이에요. 그래서 그 연관성을 찾아보려는 노력들이 있어 왔는데 이 접근법의 문제점은 부랴트라는 종족명이 생겨난 것은 13세기 초였다는 사실이에요.
30:24
Speaker A
즉 징기스칸이 몽골 초원을 통일할 때 바이칼 호수 일대에 살고 있던 호리, 바르구트, 불라가트, 에히리트 등 여러 부족들을 복속을 시키면서 이들 부족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 명칭으로 부랴트라는 종족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래요. 따라서 기원전부터 있었던 부여의 이름이 13세기 초에 와서 탄생하는 부랴트의 종족명에서 나왔다는 식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를 않는 거죠.
31:48
Speaker A
그렇다고 백조 처녀의 도모그까지 13세기 초에 생겨났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통합 명칭은 나중에 생겼다 하더라도 바이칼 호수의 주변 사람들은 저 옛날부터 백조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고 그것이 도모그에 반영되었던 거예요.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신화의 원 제목이 명궁 호리도이의 이야기인 걸로 보아서 신화와 관계된 부랴트의 대표적인 시조 이름은 호리였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32:31
Speaker A
이 호리는 코리로도 발음이 될 수 있기에 코리, 고리, 고려, 고구려로 이어지는 민간 어원적 유추도 가능하지만은 여기서의 테마는 아니므로 다시 돌아가서 부랴트 이름과 유사한 부여의 건국 신화를 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33:39
Speaker A
북쪽 오랑캐 탁리국 왕의 시비가 임신하자 왕이 그녀를 죽이려고 했다. 시비가 대답했다. 달걀만한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와 제가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아이를 낳자 돼지우리에 버렸는데, 돼지가 그에게 입김을 불어넣어 죽지 않았다. 다시 마굿간으로 옮겨 말이 밟아 죽이도록 했으나 말도 그에게 입김을 불어넣어 죽지 않았다. 왕이 하늘의 아들인가 의심하여 그 어미에게 거두어 기르도록 했다. 이름을 동명이라 하고 소와 말을 기르도록 했는데, 동명이 활을 잘 쏘자 왕은 나라를 빼앗길까 두려워 그를 죽이려고 했다. 동명이 달아나 남쪽의 엄표수에 이르렀고, 활로 물을 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주었는데, 동명이 물을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가 흩어져 추격하던 병사들이 건널 수가 없었다. 이에 도읍을 정하고 부여의 왕이 되었다.
35:18
Speaker A
왕충의 논형에 실려 있는 글인데 시기는 서기 1세기예요. 이 글을 옮겨 실은 위략의 기사를 3세기에 편찬된 삼국지가 다시 인용을 했고 비슷한 내용을 5세기에 편찬된 후한서와 6세기에 편찬된 양서가 실었습니다. 하늘과 땅이 결합해 새 민족을 낳았다는 핵심 구조면에서는 부랴트 버전과 같습니다.
35:52
Speaker A
즉 부랴트 버전에서는 하늘의 여인이 백조의 형태로 내려와 지상의 남자와 결합해 아이를 낳았고 부여 버전에서는 하늘의 기운이 지상의 여자가 잉태를 해 아이를 낳습니다. 성별은 바뀌기도 하지만은 하늘과 땅의 결합 구조는 북방 샤머니즘의 전형적인 우주 모델이었기 때문에 두 집단이 공통 문화권에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37:01
Speaker A
하지만 부리가 같았다고 해도 우리에게 전해진 부여의 건국 신화에는 부랴트 버전에 보이는 호수도 없고 백조도 없고 사랑도 없습니다. 그저 돼지우리와 마굿간과 활솜씨만 언급이 되는데 왜 같은 뿌리에서 이처럼 디테일이 다른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37:38
Speaker A
첫 번째 이유는 기록자의 시선 때문입니다. 부랴트 버전은 19세기 미국의 민속학자 커튼이 현장에서 직접 채집한 것으로 현지 이야기꾼의 감정, 색채, 세부 묘사 등 살아 있는 뭐가 느껴지죠. 그러나 부여 신화는 후한 시대의 사상가 왕충이 멀리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단지 신이한 탄생의 사례로 쓰기 위해 자신의 저서 논형에 삽입한 것이었기 때문에 스토리가 건조해진 거예요.
39:15
Speaker A
같은 그림도 화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기록자의 시선이 신화의 색깔을 결정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부랴트 버전이 11개 씨족의 이야기였다는 점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구성원이 주인공이었기에 이야기가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었어요.
39:55
Speaker A
그러나 부여 신화는 왕 한 사람만이 주인공이었기에 하늘의 기운으로 태어나신 분 이라는 이 한 줄이면 충분한 거예요. 시조의 민주적 신화가 국가 권위적 신화로 전환되었던 셈이죠. 왕권의 정당화에 호수나 백조 같은 동화적인 요소는 필요치 않았던 거예요.
40:52
Speaker A
이 점 부여에서 나온 고구려의 건국 신화도 마찬가지였어요. 시차로 볼 때 고구려의 지배 집단이 부여의 건국 신화를 그대로 응용한 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알고 있는 선녀와 나무꾼은 부여나 또는 고구려에서 직접 내려온 게 아니라 중간에 다른 루트로 들어온 얘기였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42:34
Speaker A
나는 이야기의 원형이 두 가지 층위로 전해졌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는 건국 신화의 층위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 구전의 층위예요. 우선 부여의 동명 신화나 고구려의 주몽 신화는 왕권을 정당화하는 공식 이야기였고 이걸 처음 기록한 사람도 부여나 고구려인이 아닌 외부인 곧 중국인이었어요. 그래서 호수나 목욕이나 백조 같은 동화적인 요소가 사라졌던 걸로 봅니다.
43:47
Speaker A
한편 민간 구전 층위의 스토리는 그대로 원형을 유지해 나가지요. 다시 말해 하나가 다른 하나에서 나왔던 게 아니라 공식적인 신화와 비공식적인 구전이 부여 시대와 고구려 시대에 나란히 존재했었는데 이거를 입증해 주는 것이 고구려를 자기들의 조상 국가로 여겼던 만주의 건국 신화 보다 구체적으로는 청나라의 건국 신화예요. 처음에 하늘에서 내려온 세 선녀가 연못에서 목욕을 했는데 첫째는 엉굴런, 둘째는 정굴런, 셋째는 퍼쿨런이라 했다. 목욕을 마치고 물가로 올라오자, 한 신령한 까치가 붉은 열매를 물어다 퍼쿨런의 옷 위에 놓았는데, 색깔이 매우 영롱하고 고왔다. 퍼쿨런은 그 열매가 마음에 들어 손에서 떼지 못하다가 마침내 입에 물었다. 그러다 옷을 막 입으려는데 열매가 뱃속으로 들어갔고, 즉각 임신한 걸 느꼈다. 퍼쿨런은 그 후 아들을 낳았다.
45:34
Speaker A
한자 41강에서 강의했던 것처럼 청나라의 태조무황제실록이나 만주실록 또는 청사고에 실려 있는 만주의 이 건국 신화는 민간 구전의 요소를 탈색하지 않으면서도 부여나 고구려의 건국 신화를 결합시킨 스토리로 되어 있어요. 같은 원형을 부여와 고구려 만주의 이 세 나라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승한 건국 신화와 우리가 알고 있는 선녀와 나무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뭐냐 하면은 전자는 하늘이 낳은 아이가 지상에 남았다는 점이고 후자는 남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46:42
Speaker A
지상에 남은 아이들이 부여의 경우는 동명, 고구려의 경우는 주몽, 만주의 경우는 부쿠리 용손 곧 한자로는 포고리 옹순입니다. 모두 그 나라의 시조였죠. 그런데 부여를 이은 백제나 고구려가 멸망을 하자 신화의 존재 이유가 사라집니다. 우리 민족이 왜 여기 있는가? 라는 물음에 답하던 나라들이 사라졌기 때문이죠. 신화가 국가를 잃은 거예요. 삼한 중에 남아 있는 것은 신라인데 신라는 부여나 고구려의 신화적 계보를 계승하지 않죠. 이때부터 건국 신화는 민담 차원으로 퇴화하기 시작하는데 아니 그랬다기보다는 민간 구전 층위의 설화만 남게 되는데 고구려 시대에도 영향은 있었지만 당나라와의 교류가 깊었던 신라 시대에 본격 도입된 도교의 영향 때문에 백조 처녀가 선녀로 바뀌기 시작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48:42
Speaker A
신라 뒤에 고려는 표면적으로는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표방을 했지만은 부여나 고구려의 건국 신화를 공식적으로 계승하지는 않았어요. 민간 구전 층위의 신화도 더 이상 왕권의 정당성을 필요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날개옷을 되찾은 선녀가 두 아이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는 스토리로 변형이 되는데 여기에 영향을 미친 것이 고려의 불교적 세계관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즉 선녀가 아이들을 데려가는 것은 고통의 지상을 떠나 해탈의 세계로 갔다는 의미도 되는 거죠. 또 이것이 조선조로 오면은 이번에는 좋은 어머니라면은 절대 아이를 놔두고 가지 않는다는 그 유교적 가치관이 작용을 해 가지고 아이들을 모두 데려가는 버전으로 정착하게 됩니다.
50:00
Speaker A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우리 민족의 기원을 상징하던 백조 처녀나 선녀는 잊혀져 잊혀지게 된 거죠. 네. 우리는 지금까지 바이칼 호수에서 시작된 하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변형이 되고 퇴화해 왔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바이칼 호수부터 부여의 동명 신화 그리고 선녀와 나무꾼에 이르기까지.
51:09
Speaker A
그런데 강의를 마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의 신화를 더 들여다봐야 해요. 단군 신화입니다. 단군 신화에는 곰이 등장을 해요. 이것이 백조 처녀 신화와 단군 신화의 가장 큰 차이점인데 이 곰이 뭘 뜻하는지 한번 생각해 볼까요?
52:01
Speaker A
고대 문헌들은 예맥 민족을 두 갈래로 나눠요. 예족과 맥족. 학자들은 맥족의 토템이 곰이었다고 보고 예족의 토템이 호랑이였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단군 신화의 장면은 다르게 읽혀요. 즉 환웅의 천신족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그 땅에는 이미 두 토착 민족이 살고 있었어요. 하나는 곰 토템의 맥족이고 다른 하나는 호랑이 토템의 예족이죠. 호랑이 토템의 예족은 하늘 신앙과 결합하지 못해 떠나고 곰 토템의 맥족은 하늘 신앙을 받아들여 환웅과 결합을 합니다. 그리고 단군이 태어나는 거죠. 이것이 단군 신화의 진짜 얘기예요.
53:45
Speaker A
단군 신화는 백조 처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같은 북방 샤머니즘 뿌리를 가진 별개의 신화로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구조만이 백조 처녀와 연결이 되고 웅녀 곧 곰 얘기는 고조선 고유의 토착 요소였던 것 같아요. 결국은 두 신화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어요. 다시 말해 고조선과 부여는 같은 예맥 계통의 형제 나라로 같은 하늘 신앙을 공유는 했지만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는 아직 학술적으로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54:08
Speaker A
이것이 솔직한 학문의 현황이에요.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민족과 땅에 있던 민족의 결합 그 결합에서 새 민족이 탄생하는 것 이것은 바이칼 호수에서 시작된 도모그의 바로 그 구조예요. 백조 처녀 신화에서는 하늘의 여인이 지상의 남성을 만나고 부여의 동명 신화에서는 하늘의 기운이 지상의 여성에게 내려오고 단군 신화에서는 하늘의 남성이 지상의 여성과 결합을 합니다. 성별은 이렇게 바뀌지만은 세 신화 모두 하늘과 땅이 결합하는 형태인 것이죠. 그리고 그 만남에서 모두 새로운 민족이 탄생을 하게 됩니다.
55:20
Speaker A
이렇게 보면은 형태는 다르지만 그 뼈대는 하나였던 거예요.
55:26
Speaker A
그런데 오늘 강의를 준비하면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고려 후기의 문헌들은 부여왕 부루가 단군의 아들이라고 기록을 했어요.
55:43
Speaker A
이 점을 단군기를 인용한 삼국유사는
55:50
Speaker A
단군이 서하 하백의 딸과 가까이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부루라 하였다.
55:59
Speaker A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록은 해모수가
56:06
Speaker A
부루와 주몽은 어머니가 다른 형제다.
56:13
Speaker A
라고 추가 설명을 했는데 일종의 궁여지책이었던 걸로 보입니다.
56:25
Speaker A
해모수, 해부루, 해주몽 그들 모두 태양과 관계가 있죠.
56:36
Speaker A
그들의 이름에는 모두 해자가 들어 있어요.
56:43
Speaker A
그 태양 안에 지난 강의 지난 회 때 강의했던 삼족오도 있어요.
56:51
Speaker A
이렇게 보면은 고조선과 부여와 고구려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나무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7:03
Speaker A
그 뿌리가 어디였는지
57:06
Speaker A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어요.
Topics:선녀와 나무꾼부여부랴트건국신화백조처녀고대사민족기원알타이산맥바이칼호수샤머니즘

Frequently Asked Questions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단순한 동화가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이야기는 수천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민족의 첫 번째 역사로, 고대인의 실제 역사적 사실을 상징과 신화로 전승한 설화이기 때문입니다.

부여와 부랴트 신화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두 신화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여인과 지상의 남자가 결합해 아이를 낳고, 이를 통해 민족의 기원을 설명하는 북방 샤머니즘의 우주 모델을 반영합니다.

부랴트라는 종족명은 언제 생겨났나요?

부랴트라는 종족명은 13세기 초 몽골 제국 시기에 여러 부족을 통합하는 명칭으로 처음 사용되었으며, 고대 부여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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