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된 대규모 유적지! 고조선을 찾아서 (한자57강-석묘) — Transcript

고조선과 발조선의 역사와 위치, 석묘 및 도사 유적의 중요성을 고찰하며 상고사 복원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Key Takeaways

  • 고조선은 실존 국가였으나 역사적 사료가 부족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 석묘 유적과 도사 유적은 고조선 또는 발조선의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 발조선의 위치는 춘추 시대 제나라의 7대 예물 출산지 기록을 통해 추정 가능하다.
  • 중국 학계와 한국 학계 간 고조선 및 하나라 유적 해석에 차이가 크다.
  • 상고사 연구는 계속 진행 중이며 앞으로 더 많은 발굴과 연구가 필요하다.

Summary

  • 고조선은 한국과 중국 문헌에 실존 국가로 기록되었으나 사료가 단편적이라 역사 복원이 어렵다.
  • 고조선의 수도 위치에 대해 평양, 요양, 조양, 진황도, 북경, 산동반도 등 다양한 주장이 존재한다.
  • 관자의 기록에 등장하는 발조선의 무늬가죽과 7대 예물 출산지를 통해 발조선 위치를 추정한다.
  • 석묘 유적은 섬서성 신목시에 위치하며 기원전 2300년경의 대규모 고대 도시 유적으로 평가된다.
  • 석묘 유적의 왕성대는 축구장 10개 크기이며 고구려 성벽과 유사한 방어 구조를 가진다.
  • 도사 유적은 석묘 유적 남쪽 500km에 위치하며 갑골문 원형으로 추정되는 도사 문자가 발견되었다.
  • 도사 유적과 석묘 유적은 요임금 시대와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고조선 또는 발조선 유적일 가능성이 있다.
  • 중국 학계는 석묘 유적을 하나라 수도로 주장하나 고고학적 근거가 부족하며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 화하족과 하나라의 개념은 주나라 이후 형성된 것으로 상고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견해가 있다.
  • 고조선 역사 복원은 아직 미완성이지만 석묘와 도사 유적 발굴로 상고사 윤곽이 점차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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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
Speaker A
안녕하세요. 강준식입니다.
00:08
Speaker A
먼저 멤버십에 가입해 주신 샨티 님, YKK9988 리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00:18
Speaker A
내가 사는 마을에 개나리가 피고 목련화가 폈습니다. 이제 곧 벚꽃도 만개하겠죠.
00:27
Speaker A
그러나 인생 경험으로 보면 그 봄이 순탄하게 지나가지만은 않더군요.
00:36
Speaker A
정말 지난 4개월간 잠 못 이루는 시간을 보내야 했던 우리에게 금년은 TS 엘리엇의 4월은 잔인한 달 같은 그런 계절의 반동이 없이
00:52
Speaker A
무난한 4월과 5월을 보내고 6월에 새 계절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01:00
Speaker A
지금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 것은 다국화 시대입니다.
01:09
Speaker A
막 그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한자 강의 시간이므로 이만 자제하고 다시 중심 테마로 돌아가서 오늘은 우리 민족의 최초 국가인 고조선 이야기를 좀 해 보려고 합니다.
01:41
Speaker A
고조선은 한국과 중국 문헌에 기록된 실존 국가였음이 분명하지만은 막 기록들이 너무 단편적이에요.
01:52
Speaker A
어느 정도 내용이 실린 그 삼국유사의 경우도 왕검조선의 전문이 439자 위만조선의 전문이 626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02:06
Speaker A
물론 고인돌, 비파형동검, 미송리형토기 등의 유물도 있고 춘천 의암호에서 발굴된 유적지 같은 것도 있기는 하지만
02:20
Speaker A
여전히 고조선의 역사 전체를 복원할 수준은 되지 못합니다.
02:32
Speaker A
그렇기 때문에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학자마다 이야기가 다 달라요.
02:46
Speaker A
물론 그들 가운데는 자기 주장이 옳다고 다른 주장을 비판하는 경우도 있지만은
02:58
Speaker A
막 그렇게 비판을 하는 쪽도 역으로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03:10
Speaker A
누구도 다른 주장이 틀렸다고 평가할 정도의 충분한 사료적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죠.
03:24
Speaker A
막 그동안 내가 갑골문을 통해 밝히려고 애써온 그 동이족 이야기도 사실은 우리 민족의 최초 국가인 고조선의 실체를 찾아가기 위한 막 궁여지책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03:38
Speaker A
맞춰야 할 그림은 큰데 막 그걸 완성할 조각들은 아주 조금밖에 없는
03:50
Speaker A
말하자면 정말 무모하고 고달프며 어려운 퍼즐 작업 같은 것이죠.
04:02
Speaker A
나도 그걸 압니다. 그러나 그냥 놔두면 고조선은 신화로 응고되거나
04:14
Speaker A
아니면 중국사로 흡수되고 말죠.
04:24
Speaker A
오늘 내가 다루려는 고조선도 뭐 완벽하거나 분명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04:35
Speaker A
하지만 이렇게라도 조금씩 맞춰 나가다 보면
04:41
Speaker A
언젠가 우리 상고사의 윤곽이 보다 선명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04:50
Speaker A
내 희망 사항입니다.
04:53
Speaker B
발조선의 수도
04:55
Speaker A
학교에서 우리는 고조선의 수도가 북한 평양에 있었다고 배웠습니다.
05:02
Speaker A
일제가 한반도 안으로 축소시킨 식민사관이 해방 후에도 막 그대로 답습이 되었던 거죠.
05:10
Speaker A
물론 신채호, 정인보, 박은식, 안재홍 등의 민족사학자들은
05:20
Speaker A
고조선의 수도가 요동에 있었다고 지적을 했지만 주류가 되지는 못했어요.
05:29
Speaker A
막 그러다가 해방 후 어떤 시점부터 종래 식민사관에 대한 반발이 일기 시작하면서
05:40
Speaker A
고조선의 수도가 조양, 적봉, 진황도, 북경 또는 산동반도에 있었다는 주장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05:52
Speaker A
이러한 견해는 고조선의 강역이 적봉에서 북경에 이르던 옛 고죽국과 관계가 있다고 본 북한 사학계의 시각과 겹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06:06
Speaker A
좀 복잡하죠.
06:09
Speaker A
네, 복잡합니다.
06:11
Speaker A
그래서 고조선의 수도 또는 중심 지역에 대해 지금까지 나와 있는 주류, 비주류의 주장을 모아 지도에 표시해 보면
06:24
Speaker A
1 평양, 2 요양, 3 조양, 4 진황도, 5 북경, 6 산동반도 등이 되고
06:34
Speaker A
혹자는 내륙의 산서성 또는 섬서성이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06:46
Speaker A
좀 많이 나아간 것 같기는 한데
06:52
Speaker A
그 나름에 다 근거가 있어요.
06:56
Speaker A
그래서 문헌적 사료 가운데 가장 먼저 고조선 이야기가 등장하는 관자의 기록을 좀 보실까요?
07:05
Speaker B
환공이 관자에게 물었다.
07:07
Speaker B
내 듣건대 천하의 귀중한 예물이 일곱 가지 있다던데 들어볼 수 있겠는가?
07:15
Speaker B
관자가 대답하였다.
07:17
Speaker B
음산의 연마대옥돌이 그 하나이고 연나라 자산의 백금이 그 하나이며 발조선의 무늬가죽이 그 하나이고 여수와 한수 사이의 길목에서 나오는 황금이 그 하나이며 강양의 진주가 그 하나이고 진나라 명산의 청색광물 증청이 그 하나이며 우시 변산에서 나는 옥이 그 하나입니다.
07:30
Speaker A
기원전 7세기에 제나라 환공이 천하의 7대 예문을 예물을 하문하죠.
07:40
Speaker A
이를 대답하는 관자의 말 가운데 발조선의 무늬가죽이 나옵니다.
07:47
Speaker A
이 발조선에 대해서 사학자 신채호는 신조선, 말조선, 불조선의
07:55
Speaker A
3조선 분립 시대의 불조선을 음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08:02
Speaker A
학계에선 신채호의 3조선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은 그럼에도 발조선이 고조선을 가리킨다는 점은 인정하는 것 같은데
08:12
Speaker A
나 자신은 발조선이 박조선 곧 밝은 조선에서 온 명칭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08:22
Speaker A
밝다는 것은 태양과 관계된 말이죠. 한민족의 역대 국호가 다 국호가 다 태양과 연관되었다는 점은
08:31
Speaker A
여러 번 강의를 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 정도로만 하겠습니다.
08:38
Speaker A
그런데 문제의 발조선은 대체 어디에 위치해 있었을까요?
08:44
Speaker A
위치를 명확히 알려주는 문헌이 없기 때문에 관자의 기록된 7대 예물의 그 출산지를 지도에 표시해 보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08:55
Speaker A
춘추오패 중 첫 번째 패자가 되어
09:00
Speaker A
천하를 호령했던 환공 시대의 제나라 위치에서 보면은 남쪽으로 여산, 변산
09:10
Speaker A
그리고 서쪽에 강량, 명량, 명산 등이 보이죠?
09:22
Speaker A
북동쪽은 자산입니다.
09:25
Speaker A
대충 이 정도가 춘추 시대의 판도였고 지금의 중국처럼 그렇게 넓지가 않았어요.
09:34
Speaker A
따라서 이 시대의 제나라는 만주 동쪽의 그 조양이나 요양 또는 한반도의 평양 같은 곳은 알지도 못했고
09:44
Speaker A
관심도 없었을 거예요.
09:48
Speaker A
그럼 무늬가죽 곧 표범이나 호랑이 가죽이 난다는 발조선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
09:57
Speaker A
나는 발조선도 춘추 시대의 판도 안에 있었을 걸로 봅니다.
10:08
Speaker A
물론 관자의 다른 기사에는 8천리 밖에 발조선이라는 표현이 나오기 때문에
10:14
Speaker A
제나라가 위치해 있던 산동반도에서 평양까지의 실제 거리를 적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실 분도 있겠지만
10:28
Speaker A
이어지는 기사에 보면 우시 부족의 변산도 8천리 밖 진나라 명산 쪽을 가리키는 곤륜지허도 8천리 밖
10:50
Speaker A
여기서의 8천리는 실제 거리였다기보다는 그냥 먼 곳이라는 뜻의 수식어로 사용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0:59
Speaker A
그럼 당시의 거리 개념으로 제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발조선의 수도는
11:05
Speaker A
대체 어디에 있었을까요?
11:09
Speaker A
지도의 물음표를 찍은 지역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11:18
Speaker B
석묘유적
11:20
Speaker A
그곳의 현재의 이름은 섬서성 신목시입니다.
11:27
Speaker A
오르도스 사막과 접해 있는 그 북쪽 황토고원 지대에 해발 1300m의 거대한 그 돌언덕이 있는데
11:40
Speaker A
돌산이 있는데 이 돌언덕을 한자로 표기하면 석묘 중국어 발음으로는 시마오가 됩니다.
11:50
Speaker A
사진에 보시는 것처럼 이 돌언덕에서 여의도 면적의 절반이 넘는 대규모의 고대 유적이 발견되어 석묘로 명명하게 되었는데
12:09
Speaker A
그 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에 중국 언론에서는 석묘의 수수께끼라거나
12:18
Speaker A
바위가 부서지고 하늘도 놀란다는 뜻의 석파천경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12:30
Speaker A
미국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은 중국의 폼페이라고 했고 미국 고고학자 앨런 마카는
12:42
Speaker A
당대 지구에서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였다고 평가했습니다.
12:51
Speaker A
석묘 유적엔 황성대라 불리는 궁전터가 남아 있는데
13:00
Speaker A
당시의 황전은 없었으므로 나는 왕성대로 부르겠습니다.
13:06
Speaker A
계단식으로 쌓아 올린 피라미드 형태의 왕성대 위는 평평한데 거기에는 지금은 사라진 궁전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13:20
Speaker A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목조 건물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남아 있는 왕성대의 그 규모만 보아도 웅장하고 장엄합니다.
13:33
Speaker A
학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왕성대 위의 궁전의 크기는 축구장 10개 또는 8만 평방미터 곧 2만 5천 평 가량인데
13:49
Speaker A
이거는 서울 송파구에 있는 풍납토성 전체의 3분의 2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14:00
Speaker A
실로 엄청난 규모죠.
14:02
Speaker A
산을 깎고 그 위에 멀리서 운반해 온 돌을 70, 80m 높이로 쌓아 올린 일도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을 거예요.
14:15
Speaker A
이 정도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면 정치 사회적 인적 자원을 갖춘 강대한 나라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14:29
Speaker A
궁전터에서는 수십 명의 해골을 묻은 순장묘도 나왔다는 뉴스가 있어
14:36
Speaker A
동이족의 풍습을 떠올리게 합니다마는
14:42
Speaker A
유물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14:48
Speaker A
전체적으로 석묘 유적은 궁전이 있었던 왕성대와 그걸 둘러싼 내성 그리고 그걸 다시 둘러싼 외성 등 3개 기본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15:00
Speaker A
내성을 둘러싼 성벽의 잔전 길이는 2000m 면적은 약 235만 평방미터이고
15:08
Speaker A
외성을 둘러싼 성벽의 잔전 길이는 2840m 면적은 약 425만 평방미터인데
15:20
Speaker A
남아 있는 성벽의 실제 모양을 좀 보실까요?
15:23
Speaker A
어떻습니까?
15:26
Speaker A
돌로 쌓아 올린 성벽의 규모가 대단하죠.
15:31
Speaker A
때로 성벽의 돌출 구조나 방어용 그 요철 같은 게 보이는데 완벽히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은 고구려 성벽의 치와 유사한 점이 보입니다.
15:44
Speaker A
다음 사진의 성벽과 그 밑을 걷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비교해 보세요.
15:55
Speaker A
놀랍지 않습니까?
15:57
Speaker A
2019년 탄소 14 연대 측정을 해 본 결과 이 성모 유적은 기원전 2200년에서 2300년의
16:09
Speaker A
유적인 걸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16:13
Speaker A
지금으로부터 4300년 전의 유적이에요.
16:18
Speaker A
서기와 단기를 계산할 때 2333년이라는 숫자를 어릴 적부터 암기하고 있었던 나는
16:30
Speaker A
기원전 2300년이라는 숫자를 보자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16:40
Speaker A
오 그럼 여기가 발조선?
16:43
Speaker A
아직은 가능성일 뿐이죠.
16:46
Speaker A
삼국유사에 이런 기록이 보입니다.
16:50
Speaker B
이에 2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단군왕검이 있어 나라를 열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는데 고와 같은 시기였다.
16:59
Speaker A
고는 고려 정종의 이름이 요였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의미 비슷한 고로 표기했다는 해설도 있으나
17:10
Speaker A
그런 해설 이전에 설문해자주라는 책에 보면은 요는 고다.
17:20
Speaker A
요는 본래 고라 한다.
17:22
Speaker A
고는 요와 같은 글자였다니까 단군이 조선을 개국한 것은 요임금과 같은 시기였다는 얘긴데
17:30
Speaker A
그럼 요임금이 세웠다는 나라 이름은 뭐였을까요?
17:36
Speaker A
삼국유사에 이런 문장도 나옵니다.
17:40
Speaker B
당나라의 고가 즉위한 지 50년째인 경인년 평양성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칭하였다.
17:49
Speaker A
요임금이 세운 나라 이름이 당나라였다는 거예요.
17:55
Speaker A
7세기의 당나라도 있기 때문에 중국에선 옛 당나라라는 뜻으로
18:03
Speaker A
고당이라고 부릅니다. 그 고당과 조선이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다면
18:11
Speaker A
석묘 유적 외에 또 하나의 유적도 있지 않을까요?
18:20
Speaker B
도사유적
18:22
Speaker A
네, 있습니다.
18:24
Speaker A
석묘 유적에서 남쪽으로 500km 떨어진 그 인분시 부근에 도사 유적이 있어요.
18:32
Speaker A
이 유적 또한 기원전 2300년 전의 것이라고 합니다.
18:38
Speaker A
도사 유적은 해발 1300m의 돌언덕에 위치한 그 석묘 유적과 달리 거의 평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18:47
Speaker A
도사 유적은 외성, 내성, 궁전의 3개 기본 구조로 된 석묘 유적보다 규모가 좀 작지만 그래도 궁전, 백성 주거지, 수공업 수공업 단지, 묘역, 창고, 관상대 등등을 포함하면은
19:00
Speaker A
총 면적이 400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그래요.
19:07
Speaker A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유적에서 갑골문의 원형으로 보이는 도사 문자가 네 개 발견되었는데 그중
19:19
Speaker A
도자기에 그 주사로 쓰인 글자 두 개를 보여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9:27
Speaker A
왼쪽은 그 술독을 찍은 사진이고 오른쪽은 이를 스케치한 그림이에요.
19:33
Speaker A
고대 유물의 술독이나 술항아리가 자주 보이니까 고대인은 술을 좋아했나 보다 하고 문의하신 분도 있었는데
19:48
Speaker A
고대 술은 아주 귀한 거라서 조상에게 제사를 드릴 때 사용되던 거였어요.
20:00
Speaker A
고분 등에서 자주 출토되는 술독은 바로 그 제사용의 술을 담았던 그릇이었는데
20:07
Speaker A
1번에 쓰여진 글자는 한글 을 을자 비슷하고 2번에 쓰여진 글자는 그럴 문자 비슷합니다.
20:16
Speaker A
2번의 글자가 그럴 문자의 초기 형태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으나 1번의 글자에 대해서는 이게 역자다.
20:30
Speaker A
명자다라는 식의 그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은 갈영회, 하노 등의
20:39
Speaker A
북경대학 고고학 교수들은 요자로 해석하는 것을 지지했는데
20:47
Speaker A
이 견해에 상당수의 학자들이 동조를 하고 있습니다.
20:51
Speaker A
만일 1번 글자가 요임금 시 확실하다면
20:58
Speaker A
본래 요임금의 성은 이기이고 호는 도당이며 이름은 방훈이었는데
21:09
Speaker A
왜 그를 요임금이라 불렀던 걸까요?
21:15
Speaker A
나 자신은 도사 문자를 모르기 때문에 요임금 요자가 어떻게 생겨나게 된 건지 갑골문을 통해 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21:29
Speaker A
그 밑은 갑골문 밑은 구부리고 앉은 사람을 스케치한 그림이고 위는 머리에 또는 양 어깨에 짐을 지거나
21:40
Speaker A
짐을 이거나 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 짐은 다름 아닌 흙덩이였다고 합니다.
21:53
Speaker A
갑골문을 살펴보았으니까 두 번째 금문부터 보기로 하죠.
22:02
Speaker A
금문은 선 사람이 흙덩이 한 개를 머리나 어깨에 이거나 짊어진 모습
22:10
Speaker A
세 번째 그 소전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머리나 어깨에 흙덩이를 이거나 짊어진 그림입니다.
22:25
Speaker A
그리고 네 번째 해서에 오면 머리나 어깨에 흙덩이를 세 개 이거나 짊어진 사람이
22:34
Speaker A
일어나려는 모습을 그린 건데 그 이 흙덩이는 대체 뭘 하기 위한 거냐?
22:42
Speaker A
여기엔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22:47
Speaker A
하나는 도자기를 굽기 위한 흙덩이였다는 겁니다.
22:53
Speaker A
고대인은 자기 부족이나 연맹을 위해 창조적인 문명을 행한 지도자를 수령으로 삼았는데
23:03
Speaker A
가령 최초로 산을 태워 산의 숲을 태워 화전밭 일구는 방법을 보급시킨 수령을 염제라 칭했고
23:12
Speaker A
활쏘기를 최초로 보급했다는 수령을 황제 최초로 익힌 음식을 먹는 제도를 보급시킨 수령을 순임금이라 했듯이
23:23
Speaker A
최초로 도자기 제조 기술을 보급한 수령을 요임금이라 칭했다는 겁니다.
23:34
Speaker A
도당의 도자는 도자기 도자죠.
23:40
Speaker A
다른 해석은 머리에 이거나 어깨에 짊어진 짐이 도자기를 굽기 위한 흙덩이가 아니라
23:50
Speaker A
집을 짓기 위한 흙덩이나 돌멩이였다는 겁니다.
23:58
Speaker A
상고 시대 사람들은 동굴이나 둥지에 살았지만은 인구가 증가하면서 인총이 증가하면서 살림을 떠나 평원 지대에서도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24:09
Speaker A
여기서 비바람을 피하려면 피하려면 거처를 직접 지어야만 했습니다.
24:17
Speaker A
여기에 필요한 것이 흙과 벽돌이죠.
24:22
Speaker A
문제는 어떻게 하면 거처를 쉽게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거였어요.
24:27
Speaker A
이에 흙과 벽돌로 높은 벽을 쌓는 기술을 보급한 수령을 요임금이라 칭하게 되었고
24:36
Speaker A
높이 쌓으니까 요가 높다는 뜻의 고자와 같은 글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24:43
Speaker A
1978년 도사 유적이 발굴된 이래 중국 학계에선 이곳이 하나라 수도였다는 식의 주장을 부단히 펴 왔는데
25:00
Speaker A
그 가운데는 검은 학자들도 많았어요.
25:06
Speaker A
정말 도사 유적이 하나라 것이었을까요?
25:11
Speaker A
그러나 발굴이 진전되고 연구가 심화됨에 따라 도사 유적이 하나라 것이었다고 주장하던 학자들도 기존 판단을 포기하고
25:28
Speaker A
도사 문화는 요임금설, 순임금설 또는 요순설로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는 공감대가 점차 형성되어 왔습니다.
25:38
Speaker A
우리가 살펴본 도자기의 요자가 큰 영향을 미쳤던 거죠.
25:47
Speaker A
그럼 요임금과 비슷한 시기에 개국을 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도사 유적과 함께 기원전 2300년경에 세워진 석묘 유적은
25:58
Speaker A
고조선 또는 발조선의 유적이었을까요?
26:04
Speaker B
어른거리는 고조선
26:07
Speaker A
석묘 유적은 1976년에 발견되었지만은 대규모 발굴 작업은 2011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26:19
Speaker A
아직은 발굴의 진전을 더 기다려야 하죠.
26:25
Speaker A
그러나 중국 학계에서는 석묘 유적이 조선이나 발조선이 아니라 하나라 수도였다는 주장이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26:40
Speaker A
그들은 사마천의 사기 오제본기에 기록된 황제가 붕어하자 교산에 장사 지냈다.
26:50
Speaker A
라는 문장을 인용해 황제릉이 석묘 유적에서 멀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27:00
Speaker A
그러나 실제 지도를 보면 황제릉은 석묘 유적보다는 도사 유적 쪽에 더 가까워요.
27:10
Speaker A
이 점을 지적하니까 중국 학계에서는 한서 지리지에 황제의 사당이 네 곳이 있다.
27:19
Speaker A
라는 그 한서 지리지를 인용하면서 한 곳은 연한 부근에 있고 한 곳은 자장 부근에 있으며 한 곳은 어딘가에 있지만은 마지막 한 곳은 석묘 유적이 위치한 신목시에 있다고 반박을 했어요.
27:36
Speaker A
심장운, 이화, 한건업 등 많은 그 중국 학자들이 석묘 유적의 하나라설을 주장했는데
27:48
Speaker A
그 이유는 방대한 규모의 석묘 유적이 탐났기 때문이죠.
27:52
Speaker A
외성과 내성에 둘러싸인 엄청난 규모의 궁전은 강대국이어야만 가능한데 그게 화하족의 첫 국가인 하나라여야만
28:06
Speaker A
그 후손인 화하족 곧 중국인의 역사적 위신이 선다는
28:13
Speaker A
뭐 그런 거였겠죠.
28:16
Speaker A
마침 화하족의 시조인 황제 사당도 그 부근에 있지 않느냐.
28:25
Speaker A
이때의 황제는 엠페러가 아니고 누를 황자의 황제라는 사람 이름인데요.
28:34
Speaker A
제대로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누를 황자의 황제를 정점으로 그 후손들이 하상조 3대를 쭉 이어져 나왔다는 식의 논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28:46
Speaker A
이를테면 고힐강, 부사년, 서욱생 같은 그 중국의 저명 사학자들도 부정을 했어요.
28:55
Speaker A
사마천의 사기가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데 그 뒤에 집필된 역사서들은 대체 어디에 근거해서
29:05
Speaker A
이런저런 역사적 사실들을 그럴듯하게 적었을까요?
29:10
Speaker A
내가 여러 번 언급했듯이 화하족이라는 것도 주나라가 생긴 이후 공자가 주나라 족속과 동이족을 구별한
29:20
Speaker A
이른바 화이 지변의 작업 이후에 사마천이 황제를 주나라 사람의 시조로 갖다 앉힌 뒤에 만들어낸 개념입니다.
29:30
Speaker A
적어도 주나라 이전으로 올라가면 화하족 자체가 없어요.
29:40
Speaker A
하나라가 존재했다는 점을 입증해 줄 아무런 고고학적 유적이 발견되지를 않잖아요.
29:50
Speaker A
그래서 저들은 석묘 유적이나 도사 유적을 끌어당기려고 한 겁니다.
29:58
Speaker A
하지만 두 유적 모두 하나라와 아무 관계가 없어요.
30:05
Speaker A
도사 유적의 경우에 도당이라는 요임금의 호에서 우리는 당나라의 이름을 추출해 낼 수가 있잖아요.
30:17
Speaker A
석묘 유적이 하나라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결정적 증거가 뭐냐 하면은 건국 연도입니다.
30:26
Speaker A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하나라 개국은 기원전 2070년이었다고 못 박았는데
30:34
Speaker A
석묘 유적은 그보다 200여 년 앞선 기원전 2300년 경이거든요.
30:41
Speaker A
과학적 검사 결과 말이죠.
30:43
Speaker A
특히 궁전의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30:47
Speaker A
탐이 날 거예요.
30:49
Speaker A
그러나 저들에게는 하나라 이전의 국가가 존재하질 않아요.
30:58
Speaker A
사실 석묘 유적이 처음 발견된 건 1927년입니다.
31:04
Speaker A
당시 천진에서 발간되던 대공보라는 이름의 신문에 그 사실이 처음 보도가 되었는데
31:12
Speaker A
기사 제목이 섬서성 북쪽에서
31:16
Speaker A
한 흉노 유물 발견이라고 되어 있어요.
31:20
Speaker A
그러나 당시는 아무도 주목하질 않았습니다.
31:24
Speaker A
그렇게 경시된 것은 석묘 유적이 명나라가 쌓은 말리장성 밖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에요.
31:33
Speaker A
그렇기 때문에 흉노의 산채 정도로 여겨졌던 거예요.
31:40
Speaker A
아니면 명나라가 쌓은 말리장성이 좀 허물어진 그런 게 아니냐.
31:48
Speaker A
왜냐하면 옛 문헌 어디에도 이 유적의 존재를 알리는 기록이 없었으니까 말이죠.
31:55
Speaker A
그러다가 1958년 전국 문물 조사할 때 네 명의 조사 대원이 파견되어서 그곳을 탐사한 뒤에
32:03
Speaker A
석묘 유적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했는데 역시
32:10
Speaker A
그 뒤로도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1976년
32:18
Speaker A
고고학자 대응신이 소문을 듣고 그곳을 찾아가 현장을 답사한 이후에 서안과 북경의 고고학 팀이
32:28
Speaker A
발굴을 진행하게 되면서 비로소 일반인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32:36
Speaker A
그리고 일단의 과학자들이 2019년에 탄소 14 연대 측정을 해 보았더니 기원전 2200년에서 2300년의 것으로 확정이 되었습니다.
33:20
Speaker A
그런데 기원전 2300년의 중국 대륙에는 국가다운 국가가 없는 거예요.
33:27
Speaker A
사마천의 사기에 최초의 하나라 건국이 기원전 2070년으로 기록이 되어 있었거든요.
33:37
Speaker A
그럼 궁전 규모로와 강대 세력이었던 것이 분명한 석묘 유적의 나라
33:44
Speaker A
곧 석묘 왕국은 대체 뭐냐?
33:48
Speaker A
그게 중국 학계의 고민거리입니다.
33:52
Speaker A
막연히 북방 세력이라든가 흉노 세력의 유적이라는 사람도 있지만은
34:00
Speaker A
기원전 2300년경의 북방에 그런 강대한 나라가 있었느냐.
34:10
Speaker A
아니 중국 내륙에도 그런 나라가 있었느냐.
34:13
Speaker A
없거든요.
34:14
Speaker A
하지만 우리 역사에는 있었죠. 네 고조선.
34:24
Speaker A
관자의 기록된 발조선이었을런지도 모릅니다.
34:30
Speaker A
결론은 일러요.
34:32
Speaker A
석묘 유적의 대규모 발굴 작업이 시작된 것은 2011년부터였기 때문에 아직은 발굴과 연구의 진전을 막 더 기다려야 합니다.
34:41
Speaker A
그러나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에서 동이족의 특징이었던 순장묘가 발견되었다는 점.
34:52
Speaker A
고구려 성의 특징이었던 치가 보인다는 점 등이 눈에 띕니다.
35:00
Speaker A
그리고 2000 기원전 2300년 전이라는 이것이 무언가를 우리에게 시사해 줍니다.
35:09
Speaker A
석묘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로는 제의적인 의미를 지닌 두 신의 얼굴이 새겨진 큰 석조상이 있고
35:20
Speaker A
다른 형태의 석조상들도 있습니다.
35:24
Speaker A
얼굴 표정을 보면 근엄하고 약간 화가 난 듯한 모습이기도 해요.
35:30
Speaker A
성벽에 부조된 이 얼굴들은 내 눈에는 다 같아 보이는데 왜 이렇게 성벽 곳곳에 설치해 두었던 걸까요?
35:40
Speaker A
재정 일치 시대였으니까 이는 신인 동시의 통치자의 얼굴이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35:46
Speaker A
그렇다면 혹 단군의 얼굴일까? 그냥 나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35:54
Speaker A
소와 양 등의 동물 부조도 보이고
36:00
Speaker A
화살로 말을 쏘는 부조도 보입니다.
36:05
Speaker A
독수리 도자기도 보이네요.
36:08
Speaker A
부조된 벽화 가운데는 용 그림도 보이고
36:12
Speaker A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사람에게 덤비는 그림도 보입니다.
36:17
Speaker A
재미있는 것은 석묘 유적의 궁전에서 악어를 키우던 연못이 발견되었고
36:26
Speaker A
거기서 악어뼈가 출토되었다는 사실입니다.
36:30
Speaker A
조사를 해 본 결과 양자강에 살던 악어와 같은 거였다고 그래요.
36:36
Speaker A
당시 석묘 왕국에서는 악어를 키워도 될 정도로 좀 따스한 기온이었다는 뜻도 됩니다.
36:45
Speaker A
석묘 왕국의 사람들은 사진과 같은 악어 가죽을 이용해 가지고
36:50
Speaker A
제의용 북이나 장구를 만들었다는 거예요.
36:56
Speaker A
또 옥을 아주 좋아했던 것 같아요.
37:00
Speaker A
석묘 유적에서 출토된 다양한 옥기를 사진으로 보여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37:07
Speaker A
이런저런 그 옥으로 만든 물건들이 많이 보이죠.
37:10
Speaker A
뼈를 또 활용해서 화살촉도 만들고
37:14
Speaker A
입으로 부는 구황 고대판 하모니카 비슷한 구황이라는 악기도 만들었다 그래요.
37:20
Speaker A
또 옷을 깃기 위한 뼈바늘도 만들었는데
37:25
Speaker A
놀라운 것은 석묘 유적의 집터에서 출토된 솥 안에 아기 유골에 붙어 있던 4300년 전의 섬유 조각이 발견된 사실입니다.
37:36
Speaker A
배옷 조각인데
37:39
Speaker A
잘 보세요. 가로 세로로 짠 흔적이 보이죠?
37:44
Speaker A
이미 그 시절에 배옷을 짜서 입었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37:50
Speaker A
자 이렇게 보면은
37:54
Speaker A
석묘 왕국은 결코 간단한 나라가 아니었어요.
38:00
Speaker A
앞에서 뼈 화살촉의 유물을 보여드렸지만은
38:06
Speaker A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 있는 엄청나게 크고 높은 성벽은 외적으로부터의 방어를 위한 거죠.
38:20
Speaker A
그만큼 군사력이 대단했다는 반증도 됩니다.
38:27
Speaker A
크고 강한 나라 내게는 어쩐지 이게 고조선일 것만 같은데
38:33
Speaker A
이 왕국은 기원전 1800년경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38:40
Speaker A
명확한 이유는 밝혀진 게 없지만은
38:45
Speaker A
주변 환경의 악화 다시 말하면 사막화 현상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38:52
Speaker A
숲이 사라지면서 추위를 이겨낼 연료가 고갈이 되고 농사도 되지를 않으니까
39:00
Speaker A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거죠.
39:06
Speaker A
고조선을 찾는 길은 정말 지난합니다.
39:11
Speaker A
그래도 다시 찾아 나서겠습니다.
39:15
Speaker A
응원해 주시고 동참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39:20
Speaker A
오늘은 여기서 강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39:24
Speaker A
감사합니다.
39:26
Speaker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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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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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quently Asked Questions

고조선의 수도는 어디였나요?

고조선의 수도 위치에 대해서는 평양, 요양, 조양, 진황도, 북경, 산동반도 등 다양한 주장이 있으며 명확한 사료가 없어 학자마다 의견이 다릅니다.

석묘 유적은 어떤 유적인가요?

석묘 유적은 섬서성 신목시에 위치한 기원전 2300년경의 대규모 고대 도시 유적으로, 왕성대와 내성,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조선 또는 발조선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도사 유적에서 발견된 도사 문자는 무엇인가요?

도사 유적에서는 갑골문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도사 문자가 발견되었으며, 일부 학자들은 이를 요임금과 연관된 문자로 해석하여 고대 문명과의 연결고리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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