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5년 『규원사화』와 1929년 『대동사강』이 증명하는 단군 47세의 진실과 환단고기 위서론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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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Takeaways
- 단군 47세 명단의 일치는 고대 문헌의 존재를 강력히 시사한다.
- 『규원사화』, 환단고기, 『대동사강』은 모두 한문 원본으로 신뢰성 검증을 받았다.
- 한국 사학계는 식민사관을 벗어나 민족 주체적 역사관 확립이 필요하다.
- 한문 해독 능력 부족이 역사 연구의 질 저하와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
- 역사적 진실 규명을 위한 공개적이고 학술적인 토론이 절실하다.
What the video covers
- 단군 47세 명단이 1675년 『규원사화』, 1911년 환단고기, 1929년 『대동사강』 세 책에서 일치함을 발견.
- 『규원사화』는 숙종 1년(1675년)에 북애자가 쓴 것으로 알려졌으며, 1972년 국립중앙도서관 전문가들이 진본 인증.
- 세 권 모두 한문 필사본으로, 당시 최고의 역사학자, 고고학자, 한문학자가 검증하여 신뢰성 확보.
- 한국 사학계가 일제 식민사관에 기반한 왜곡된 역사관을 유지하며, 한문 해독 능력 부족으로 새로운 연구에 소극적임을 지적.
- 『규원사화』, 환단고기, 『대동사강』은 우리 민족의 주체성과 고대사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내용임.
- 식민사학자들의 역사관과 달리, 이 세 책은 한국 고대사가 반도 내외의 식민지가 아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역사임을 주장.
- 1972년 전문가들의 진본 인증 이후에도 한국 역사학계는 공개 토론을 회피하며 논쟁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음.
- 환단고기는 1911년에 편찬되었으며, 『대동사강』은 1929년에 천도교에서 발간됨.
- 한문 해독 능력의 중요성과 과거와 달리 현대 한국 역사학계의 한문 교육 부재 문제를 강조.
- 역사 연구의 객관성과 민족 정체성 회복을 위한 지속적인 학술적 검증과 토론 필요성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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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aker A
제가 이 세 권의 책에서 단군 47세를 한번 다 찾아봤어요.
Speaker A
시기별로는 규원사가 숙종 1년 1675년이고
Speaker A
환단고기가 1911년이고 그다음에 대동사강이 1929년인데요.
Speaker A
단군 47세가 똑같아요.
Speaker A
이거는 결론은 뭡니까? 뭔가 텍스트가 있지 않았으면은 나올 수가 없는 거죠.
Speaker A
그 환단고기를 이제 몇 가지 관점을 가지고 살펴보고 있습니다.
Speaker A
지난 시간에는 환단고기에 나와 있는 어아가라는 단군 시대의 신가에 대해서 한번 살펴봤습니다.
Speaker A
이번 시간에는 환단고기에는 단군부터 47세까지의 여러 이름들이 47분의 이름들이 쭉 나옵니다.
Speaker A
제가 이렇게 몇몇 책들을 살펴보다가 묘한 일치성을 발견했어요.
Speaker A
하나는 뭐냐면 이 규원사화라는 조선 숙종 1년에 썼다는 책이 있습니다.
Speaker A
그 다음에는 광무 15년 1911년에 계연수 선생이 편찬했다는 환단고기가 있고 그 다음에 1929년에 천도교에서 발간한 대동사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Speaker A
저희 연구소에는 이 세 권의 책들이 다 있는데요. 이게 규원사화하고
Speaker A
이 책이 환단고기 배달의 숙본이고요. 그 다음에 이 책이 1929년에 발간한 대동사강인데요.
Speaker A
조금 더 이 세 권의 책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드리면 이 규원사화는 이제 숙종 1년 1671년에 북애자라는 선비가 썼다는 이야기인데 쓴 게 아니라 어느 책을 얻어 가지고 옮기면서 자기 관점도 들어갔다는 거죠.
Speaker A
그런데 이 책은 1968년에 번역본이 출간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실제 원 필사본을 가지고 1972년에 이가원, 손보기, 임창 순 진본 확실 인증서 작성 이 세 분이 검증을 했어요. 그냥 개인 차원에서 검증한 게 아니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이 세 명의 전문가에게 의뢰를 했습니다.
Speaker A
그래서 뭐 이가원 선생은 역사학자고 또 손보기 선생은 유명한 고고학자고 임창순 선생은 한문학자죠.
Speaker A
임창순 선생은 지곡(芝谷) 서당이라는 서당을 운영했는데 이 당시 선비들이 거의 다 이제 세상을 많이 떠나면서 대학원생들이나 대학 교수들 역사나 철학을 하는 교수들이 한문을 배울 데가 별로 없었어요.
Speaker A
그래서 이 당시에는 임창순 선생이 운영하는 지곡서당에 가서 많이 배웠습니다. 제가 예전에 어떤 고고학자 대학 교수분 만나니까 자긴 어느 대학 출신보다 난 지곡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라는 거를 더 이제 자랑스럽게 말씀하는 걸 들었는데요.
Speaker A
왜 그러냐면 우리나라 지금 뭐 서울대부터 모든 사학과를 비롯해서 지금 사학과 커리큘럼으로는 박사학위 받아도 한문을 할 수가 없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 역사학과 교수들 과거에 비해서 상당히 무식해졌어요.
Speaker A
일단 한문을 모르기 때문에 상당히 무식해졌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무식하니까 새로운 책이 나오면 연구해야 되는데 이게 전부 다 한문본들이에요 전부 다. 뭐 이 환단고기도 다 한문본이고 그 다음에 이 대동사강도 다 한문본입니다. 규원사화도 전부 다 한문 필사본들이에요.
Speaker A
그러니까 모르니까 한문은 모르니까 가짜로 몰아붙이면 쉽잖아요? 그리고 또 이 책들은 전부 다 우리 민족의 주체성, 자주성을 이야기하고 우리의 고대사가 훌륭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데 우리나라 지금 사학과는 아직도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인 이마니시 류니, 쓰다 소키치니, 이케우치 히로시니 이런 이 사람들이 쓴 글 보면 아주 수준 낮은 인물들인데 이들을 갖다 역사의 신처럼 영원한 스승으로 떠받들고 보니까 옛날보다 수준이 더 떨어졌어요. 그런데 이 당시 이 세 분은 당대의 최고의 대가들이었어요. 이분들이 글씨 필적이라든지
Speaker A
한문이라는 건 뭐냐면 그 시대에 따라서 문장이 좀 달라집니다. 제가 또 예전에 한문 공부 쭉 하다가 한 10여 년 가까이 이렇게 보다가 중국의 주로 고대사 관련한 뭐 사기 한서 후한서 뭐 이런 책들 주로 보다가 송나라 때 글을 보니까 아주 쉬운 거예요. 뭐냐면 송나라 때가 중국에서는 한문이 문법이 일차적으로 정비되는 그런 시대고 그 다음에 쭉 흘러 가지고 나중에 백화문(白話文)이라고 불리는 현대 중국어로 발전하게 되는데요.
Speaker A
그 식으로 이분들은 그 당시 재질도 봤고 이 종이 만든 그 종이가 실제 조선 시대 종이냐라고 봤더니 조선 후기 종이 맞다라고 해서 필체라든지 문체라든지 문장이라든지 이 모든 것이 조선 숙종 무렵에 쓴 게 맞다라고 해서 세 분이 감정서를 이건 진본이 맞습니다라고 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보냈습니다.
Speaker A
그러면 요 식민사학자들은 규원사화도 우리 고대사가 훌륭했다 하는 이야기니까 이 총독부 역사관하고는 안 맞잖아요. 총독부 역사관은 우리 민족은 고대부터 반도에 국한되어 있었고 반도의 북쪽은 중국 한나라 식민지였고 반도의 남쪽은 야마토의 식민지였다라고 하는 노예의 역사관인데 노예 역사관이 아니라 주체의 역사관이니까 안 맞죠.
Speaker A
그런데 이 대가 세 분이 이렇게 발표를 사실이다라고 발표를 하고 인증서까지 썼으면은 그때 아 틀렸다 아니다. 우리 논쟁하자 이래야 되는데 우리나라 사학계 역사학계에 쥐약이 뭐냐면 공개 학술 토론회 하자 그럼 쥐약이라고 그랬죠? 찍소리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벌써 1972년이니까 세월이 많이 지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람들 뇌리에서 다 이제 잊혀졌다라고 생각하고 요즘 또 위사다 뭐다 하고 떠드는 게 한국 역사학계의 아주 고질적인 습성인데 한국 역사학계라기보다는 대일본 제국사의 한국 지방사 하는 사람들이죠 한국 역사학자들이. 그래서 환단고기는 1911년에 편찬했다라고 하고 79년에 배달의 숙본이 나옵니다. 그 대동사강이라는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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