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고구려 역사 200년, 김부식이 고의로 삭제했다? 1300년 전 묘지명에서 찾은 대반전 | … — Transcript

삼국사기와 김부식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고증하며, 역사서 편찬 배경과 비판을 심층 분석한 KBS 역사스페셜 영상입니다.

Key Takeaways

  • 삼국사기는 김부식 개인의 왜곡된 역사서가 아니라 당시 자료에 근거한 공식 편찬물이다.
  • 삼국사기에 대한 비판은 시대적, 정치적 배경에 따라 다양하고 상충하는 견해가 존재한다.
  • 고구려 초기 역사 삭제 의혹은 신빙성이 낮으며, 외부 자료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 삼국사기는 우리 고대사 연구에 필수적인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 보존과 복원 작업을 통해 삼국사기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Summary

  •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이 편찬한 우리 고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서이다.
  • 일제 식민 시기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 등은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로 비판하며 삼국사기를 왜곡된 역사서로 봤다.
  • 삼국사기는 50권으로 구성되며, 조선 시대 목판 인쇄를 통해 후대에 전해졌다.
  • 문화재 보존 작업을 통해 삼국사기의 원형을 복원하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 삼국사기 편찬은 김부식 개인의 관심이 아닌 고려 사회와 인종의 필요에 따른 공식 작업이었다.
  • 김부식은 삼국사기 머리말에서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히 밝혔다.
  • 삼국사기에는 사대주의적 시각과 자주적인 비판이 혼재되어 있어 단순한 사대주의 역사서가 아니다.
  • 조선 시대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삼국사기에 대한 비판이 서로 상충하는 양상을 보였다.
  • 일본 식민 사학자들은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허구로 폄하했으나, 현대 학계는 삼국사기의 고대사 자료 가치를 인정한다.
  • 고구려 초기 역사 200년 삭제 의혹은 고구려 묘비명 자료로 반박되며, 삼국사기는 당시 자료에 충실한 역사서임이 입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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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Speaker A
수만 권의 고서를 소장하고 있는 성암 고서 박물관.
00:10
Speaker A
삼국사기 진본은 여기서도 별도로 보관돼 있다.
00:20
Speaker A
조심스럽게 책을 싼 종이를 열면 삼국사기는 모습을 드러낸다.
00:38
Speaker A
삼국사기는 모두 50권. 그러나 아홉 책으로 묶여져 있다.
00:46
Speaker A
이 책이 남아 있었기에 우리의 고대사도 온전할 수 있었다.
00:52
Speaker A
그러나 삼국사기는 근대에 들어와 모진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00:58
Speaker A
일제 식민 시기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
01:08
Speaker A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민족 정신을 일깨워야 했기에 고려 왕을 황제로 부르고 금나라를 정벌하자는 묘청의 자주적인 주장에 주목했다.
01:25
Speaker A
묘청이 김부식에게 패하므로 이 땅에는 사대주의가 자리 잡았다고 보았다.
01:35
Speaker A
김부식에 대한 비판은 삼국사기로 이어졌다.
01:45
Speaker A
김부식은 사대주의 사서인 삼국사기를 남기고 민족 주체적인 역사는 말살해 버렸다고 주장했다.
01:55
Speaker A
이러한 주장은 지금도 그 위력을 잃지 않고 있다.
02:04
Speaker A
한일간 신문은 노골적으로 삼국사기를 비판하고 인터넷에는 김부식을 민족 반역자라고까지 규정하는 글들이 범람하고 있다.
02:16
Speaker A
김부식은 왜 삼국사기를 지었을까?
02:24
Speaker B
오늘은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는 삼국사기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02:30
Speaker B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이 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서입니다.
02:36
Speaker B
이 책이 없었다면 우리 고대사에 많은 부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02:45
Speaker B
그러나 삼국사기는 그동안 수많은 부정적인 평가에 시달려 왔습니다.
02:53
Speaker B
저자 김부식이 사대주의자이기에 삼국사기도 사대주의에 물든 역사서라는 것입니다.
03:01
Speaker B
심지어 저자인 김부식이 사료를 조작했다는 비난까지 있었습니다.
03:06
Speaker B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인데요. 여기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03:15
Speaker B
묘청 등이 패하고 김부식이 이겼으므로 조선사가 사대적, 보수적, 속박적 사상인 유교 사상에 정복되고 말았다.
03:24
Speaker B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 선생의 주장입니다.
03:27
Speaker B
그런데 과연 김부식에 대한 이런 평가는 다당한 것일까요?
03:33
Speaker B
또한 삼국사기는 사대주의자가 왜곡한 사서에 불과한 것일까요?
03:42
Speaker B
오늘은 삼국사기에 대한 그동안의 비판이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인지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03:49
Speaker A
삼국사기 판각 작업이 1512년 경주부에서 있었다.
03:56
Speaker A
전체 50권 분량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천장 가량의 목판을 일일이 새겨야 한다.
04:03
Speaker A
중종 7년 경주 부사 이계복은 삼국사기가 점점 구하기 어려워지자 혹시 삼국사기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염려했다.
04:12
Speaker A
삼국사기를 새로 인쇄해 펴내기로 하고 여러 고을에 나눠 판을 새기도록 했다.
04:20
Speaker A
그래서 현재 남아 있는 삼국사기는 같은 책 속에 여러 가지 글자 꼴이 나타난다.
04:28
Speaker A
이때 목판으로 찍어낸 삼국사기 덕으로 조선 시대의 유생들이 우리의 역사를 잊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04:35
Speaker A
삼국사기는 삼국의 본기 28권과 연대별로 왕력을 기록한 연표 3권.
04:43
Speaker A
제사 복식 지리지 등으로 구성된 잡지 9권.
04:50
Speaker A
인물지인 열전 10권으로 구성돼 있다.
04:55
Speaker A
국보 525호인 옥산서원 소장 삼국사기.
05:01
Speaker A
이 책은 지금 보존 처리를 받고 있다.
05:05
Speaker A
문화재 보존을 전문적으로 하는 정재 문화재 연구소.
05:11
Speaker A
삼국사기가 모두 해체되어 한 장 한 장 펼쳐져 있다.
05:16
Speaker A
책이 묶여진 후 500년 만에 처음으로 보수를 위해 해체된 것이다.
05:22
Speaker A
500년 동안 서원의 유생들이 넘기고 보았을 삼국사기는 곳곳이 달아 없어지고 찢어져 있다.
05:30
Speaker A
부로 해체된 삼국사기는 한지의 올 하나하나를 살려 붙이는 세심한 보존 처리를 거친다.
05:36
Speaker A
보존 작업이 끝나면 책은 더욱 원형에 가깝게 된다고 한다.
05:41
Speaker C
이게 옥산서원에서 온 삼국사기인데요. 이 유물들이 그러니까 오랜 세월 지나면서 많이 사용을 하신 거 같아요.
05:50
Speaker C
그러니까 다른 책들에 비하면 굉장히 보존 상태는 양호한데 오래 사용하셨기 때문에 오염이 있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오래 쓰셔서 달아서 없어진 부분들이 있으세요.
06:00
Speaker C
그래서 그 부분들을 보강하고 그리고 오염을 제거하는 목적으로 지금 보존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06:05
Speaker A
삼국사기 한 장 한 장이 매우 소중하게 처리되고 있다.
06:11
Speaker A
그런데 책이 만들어지던 고려 시기에도 삼국사기 편찬은 매우 가치 있는 일로 여겨졌다.
06:19
Speaker A
최우보의 묘지명은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06:25
Speaker A
이 묘지명은 삼국사기 편찬 관련자들이 삼국사기 저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잘 말해 준다.
06:33
Speaker A
묘지명에는 김부식이 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저술했음을 밝히고 있다.
06:40
Speaker A
최우보는 교정을 보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찾아 바로잡는 공을 세웠다고 한다.
06:48
Speaker A
최우보는 삼국사기 편찬 작업에 참가하고 교정을 본 것을 그의 일생의 여러 일 중에 자랑스러웠던 기억으로 무덤 속까지 가져간 셈이다.
06:55
Speaker A
삼국사기 편찬은 김부식의 개인적인 관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07:01
Speaker A
고려 사회가 전 왕조의 역사를 정리해 둘 필요가 있었고 인종과 김부식은 그 필요에 따랐던 것이다.
07:10
Speaker D
12세기 인종을 전후한 시기에 그 무르익은 그 문화적인 감각이 아니었다면 삼국사기는 편찬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07:20
Speaker D
그 당시 문화가 그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는 거겠죠.
07:28
Speaker D
그런 점에서 삼국사기는 그 시대의 문화적 감각.
07:33
Speaker D
문화 정도를 갖다 그대로 반영해 준 그런 시대적 산물이라고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겠습니다.
07:37
Speaker A
김부식은 당시의 존재하던 삼국의 고기는 중국 역사에 비하면 내용이 너무 간단해 빠진 부분이 많고.
07:45
Speaker A
문장이 나빠 교훈을 줄 수 없다고 한다.
07:51
Speaker A
또한 선비들이 우리 역사를 잘 모르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책을 다시 쓰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07:58
Speaker E
머리말에서 결국은 내가 이 책을 왜 써야 되느냐 하는 그 이유가 우리나라의 그 글 깨나 하는 사람들이.
08:08
Speaker E
그렇잖아요. 중국 건 줄 잘 잘 알면서 내 걸 하나도 모르지 않습니까?
08:14
Speaker E
그러니 이게 얼마나 창피하냐. 결론적으로 이 책을 쓴 동기는 나를 알자. 우리를 알자는 뜻이 기본 틀입니다.
08:22
Speaker B
삼국사기가 사대주의에 물든 역사서라는 비난은 근거가 전혀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08:30
Speaker B
백제가 당나라에 멸망하자 김부식은 이렇게 말합니다.
08:36
Speaker B
대국에 죄를 얻었으니 그 망하는 것도 당연하다.
08:42
Speaker B
이러한 주장과 함께 신라의 연호 사용을 비난하는 사론을 썼기에 김부식은 사대주의자로 낙인 찍히게 된 것입니다.
08:50
Speaker B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이런 사대적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08:55
Speaker B
당나라의 황제인 당태종이 죽자 김부식은 이렇게 말합니다.
09:03
Speaker B
동방을 패어로 만들어 즐기려다 죽어서야 그만두었다. 김부식은 중국 역사에서는 성군이라 칭송받는 당태종을.
09:13
Speaker B
전쟁을 즐기다 죽어서야 그만둔 침략 군주로 비난하고 있기도 합니다.
09:21
Speaker B
이처럼 어떤 구절을 보면 삼국사기는 사대주의에 물든 사서가 되었다가.
09:29
Speaker B
또한 객관적이고 자주적인 역사서가 되기도 하는 것이죠.
09:33
Speaker B
그렇다면 전체를 봤을 때 삼국사기는 어떤 사서가 되는 것일까요?
09:39
Speaker A
조선 시대가 되면 삼국사기는 전혀 다른 방향의 비난을 듣게 된다.
09:48
Speaker A
김부식이 사대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하지 않아 불경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09:55
Speaker F
삼국사기가 어 조선 시대 선비학자들 눈에는 신비적이고 비현실적인 사고들까지도 포함하고 있다고 하는 점에서 그리고 조선 당대보다 덜 모화적이고 사대적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비난의 표적이 됩니다.
10:10
Speaker F
반면에 이제 식민지 시대가 되면 어 단재 신채호 선생님을 비롯해서 많은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이.
10:20
Speaker F
민족의 주권이 외세에 의하여 유린되고 있던 현실 속에서 삼국사기가 가지고 있는 중세 중국 중심적 세계관에 동의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10:37
Speaker F
그러다 보니까 고려 당대의 비판의 내용과 조선 초의 그것 그다음에 실학자들이나 일제 시대 식민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비판의 논조가 서로 상충을 하는 것입니다.
10:50
Speaker F
그러니까 결국 각자가 처해 있는 현재적인 입장에 충실한 관점으로 삼국사기를 비판하다 보니까.
10:59
Speaker F
오히려 반대되는 비판들도 속출하고 있고 그러한 어 무책임한 비판이 범람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11:05
Speaker A
삼국사기에 대한 가장 심각한 비판은 삼국사기의 내용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11:13
Speaker A
일제 식민 사학자인 츠다 소키치 스에마스 등은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은 전연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11:22
Speaker A
이들은 주로 일본 서기의 관점에서 삼국사기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게 된다.
11:31
Speaker A
츠다 소키치는 삼국의 상대 기사는 모두 믿을 수 없는 허구라고 주장했고 백제의 경우 근초고왕 때가 돼야 신뢰할 수 있다고 했다.
11:40
Speaker A
스에마스의 경우는 신라 초기의 왕명마저 조작된 것이며 초기의 연대는 전연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11:48
Speaker A
이런 주장은 우리 역사 학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11:54
Speaker G
이 삼국사기의 기록이 날조되고 조작된 것이다라고 그 폄하해 가지고 삼국사의 기록 자체를 불신하는 어 그런 그 학풍이 그 이 대단히 강했습니다.
12:05
Speaker G
그 결과 우리나라의 원로 그 사학자들도 어 삼국사의 초기 기록을 거의 불신했는데 어 실은 그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그 불신하고서 어 우리 고대사를 그 설정할 수가 없습니다.
12:20
Speaker G
비록 고려 인종 때에 1145년에 삼국사기가 쓰였지만은 삼국사기가 근거로 한 그 자료는 고대의 그 이 자료들 이 자료들이 그 이용됐기 때문에 우리는 고구려나 백제 신라의.
12:36
Speaker G
어 조그마한 수도 중심의 그 성읍 국가에서 어 영역 국가 그 정복 사업을 벌리는 그 이 국가의 발전사가 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어 우리 삼국사기는 대단히 소중한 자료입니다.
12:47
Speaker A
삼국사기 50권에는 신라의 기록이 가장 많다.
12:54
Speaker A
뿐만 아니라 국력이 가장 미약했던 신라가 고구려보다 먼저 건국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3:02
Speaker A
그렇기 때문에 경주 출신인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신라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고구려사를 고의로 삭제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이 줄곧 제기돼 왔던 거죠.
13:10
Speaker A
과연 김부식은 신라의 역사를 높이기 위해 고구려의 초기 역사 200년을 삭제한 것일까요?
13:16
Speaker A
그런데 이 자료를 한번 보시죠.
13:20
Speaker A
당나라로 건너가 죽은 고구려 유민 고자의 묘비입니다.
13:29
Speaker A
여기에는 고구려가 건국되어 망하기까지 708년이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13:36
Speaker A
이는 중국 기록보다 오히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흡사합니다.
13:42
Speaker A
김부식이 고구려의 초기 역사 200년을 삭제한 것이 아니란 증거인 셈입니다.
13:50
Speaker A
이처럼 삼국사기는 김부식이 자신의 의도대로 고쳐 쓴 역사서가 아니라.
13:56
Speaker A
당시까지 있었던 문헌과 자료에 철저히 근거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Topics:삼국사기김부식고구려 역사사대주의신채호역사 왜곡고대사문화재 보존역사 비판고려 인종

Frequently Asked Questions

김부식은 왜 삼국사기를 편찬했나요?

김부식은 당시 고려 사회와 인종 왕의 명에 따라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자 삼국사기를 편찬했습니다. 이는 개인적인 관심이 아닌 공식적인 역사 정리 작업이었습니다.

삼국사기가 사대주의 역사서라는 비판은 타당한가요?

삼국사기에는 사대주의적 시각도 일부 있으나, 동시에 자주적이고 비판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단순히 사대주의 역사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고구려 초기 역사 200년이 삼국사기에서 삭제되었나요?

고구려 초기 역사 200년 삭제 의혹은 고구려 유민 고자의 묘비명 등 외부 자료와 일치하는 점으로 보아 근거가 부족하며, 삼국사기는 당시 자료에 충실한 역사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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